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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6-09-27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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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촉석루 보물 승격 어디까지 왔나…경남도 심의 통과·국가유산청 신청 본격화

‘진주 남강·촉석루 일원’은 국가 명승 지정…이제 촉석루 건축물 자체의 역사·건축·학술적 가치 입증이 관건

기사입력 2026-09-27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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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보물 승격, 이제는 진주의 힘을 보여줄 때다…‘단금지교’가 필요한 이유

1948년 국보였던 촉석루, 6·25전쟁으로 소실 후 1960년 재건…경남도 심의 통과로 보물 승격 재도전


진주의 상징이자 남강의 얼굴인 촉석루가 다시 한 번 국가문화유산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과거와 달라야 한다.

촉석루는 이미 단순한 지방 명소가 아니다. 2026년 9월에는 ‘진주 남강·촉석루 일원’이 국가지정 자연유산 명승으로 지정되면서 남강과 절벽, 촉석루, 진주성, 의암이 어우러진 역사문화경관의 가치까지 국가적으로 인정받았다.

이제 남은 질문은 더욱 선명해졌다.

그렇다면 촉석루라는 건축물 자체의 역사적·건축학적 가치도 국가가 제대로 평가할 차례가 된 것 아닌가.


1948년 국보였던 촉석루…왜 다시 보물을 신청해야 하나


촉석루의 역사는 결코 가볍지 않다.

촉석루는 고려시대부터 이어져 온 누각으로, 밀양 영남루·평양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누각으로 꼽혀왔다.

특히 1948년에는 국보로 지정됐다.

그러나 한국전쟁이라는 비극 속에서 촉석루는 불에 타 소실됐고, 이후 1960년 재건됐다.

전쟁으로 문화유산을 잃은 뒤 다시 세운 건축물이라는 점은 촉석루가 안고 있는 가장 큰 역사적 약점인 동시에, 역설적으로 오늘날 우리가 주목해야 할 역사이기도 하다.

문제는 바로 이 ‘재건’이었다.

과거 국가문화유산 지정 과정에서는 1960년 재건 당시 누각 아래를 받치는 누하주 일부가 목재에서 화강석으로 교체된 점 등이 원형 훼손 논란으로 작용했다.

실제로 2014년 국가 지정 문화유산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데에는 이 문제가 결정적인 쟁점으로 거론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복원 논란’에 새로운 자료가 등장했다


진주시가 이번 보물 승격 재도전에 나서면서 가장 공을 들인 부분도 바로 이 대목이다.

1960년 재건이 단순한 민간의 임의적인 개조가 아니라 당시 국가기관의 승인과 전문적인 설계·감독 아래 진행된 복원사업이었다는 점을 입증할 자료를 새롭게 제시했다.

특히 당시 재건 설계도와 관련 자료 등을 통해 누하주 화강석 교체가 당대의 복원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는 점을 설명했다.

진주시는 당시 최고 수준의 문화유산 복원 전문가였던 임천 선생이 설계·감독에 참여했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돌로 바꿨으니 원형 훼손이 아니다”라는 주장이 아니다. 당시 어떤 시대적 상황에서, 어떤 절차를 거쳐, 어떤 전문가가 재건을 진행했는지를 역사적 자료로 다시 판단해 달라는 요구인 것이다.

따라서 문화유산의 가치는 현재의 잣대 하나만으로 결정할 수 없다. 그 시대의 복원 기술과 사회적 상황, 국가의 문화재 정책, 당시 전문가들의 판단까지 함께 살펴봐야 한다.


촉석루를 둘러싼 논쟁은 ‘원형’이라는 단어에서 멈춰서는 안 된다


물론 원형 보존은 문화유산 지정에서 중요한 기준이다.

전쟁으로 소실된 건축물을 재건하면서 구조와 재료가 달라졌다면 그 부분은 엄격하게 검토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재건된 건축물의 역사적 가치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촉석루의 경우에는 ‘전쟁으로 사라진 문화유산을 어떻게 다시 세웠는가’라는 복원 역사 자체가 하나의 문화유산적 가치​가 될 수 있다.

1960년 촉석루가 다시 세워지기까지의 과정 역시 대한민국 문화유산 복원사의 한 장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 필요한 것은 “원래 나무였는데 왜 돌로 바꿨느냐”라는 단순한 질문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왜 그렇게 복원했으며, 당시 그 결정은 어떤 국가적 절차와 전문가의 판단을 통해 이뤄졌는가.”

이 질문까지 함께 살펴봐야 한다.
 
1948년 국보였던 진주 촉석루, 왜 다시 보물에 도전하나…7만 시민의 ‘단금지교’


‘남강·촉석루 일원 명승’ 지정은 새로운 전환점이다


특히 올해 상황은 과거와 다르다.

국가유산청은 2026년 9월 ‘진주 남강·촉석루 일원’을 국가지정 자연유산 명승으로 지정했다.

국가유산청은 남강의 물길과 자연 절벽, 촉석루가 어우러지는 경관적 가치뿐 아니라 진주성, 의암 등과 연결된 역사문화적 상징성도 높게 평가했다.

이것은 중요한 변화다.

촉석루가 단순히 오래된 건물이 아니라 주변 자연과 역사, 문화가 결합된 국가적 경관 자산이라는 점이 공식적으로 인정된 셈이다.

그렇다면 이제 촉석루 건축물 자체의 가치도 별도로 엄정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명승 지정과 보물 지정은 서로 다른 제도다.

명승은 자연·경관적 가치에 초점이 있고, 보물은 유형문화유산으로서 건축물의 역사성·예술성·학술성 등을 평가한다.

따라서 두 지정은 경쟁 관계가 아니라 서로 다른 차원에서 촉석루의 가치를 증명하는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진주 시민 7만여 명이 서명한 이유


진주시와 진주문화원은 2022년부터 촉석루 보물 승격을 위한 범시민 서명운동(https://www.jinju.go.kr/05190/07322.web?)을 벌여왔고, 약 7만 명이 참여한 것으로 집계됐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숫자 자체가 아니다.

시민들이 왜 서명했느냐는 질문이다.

아마도 촉석루를 단순한 관광시설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진주 사람에게 촉석루는 남강을 바라보는 누각이면서 진주성의 역사이고, 논개의 정신이 깃든 공간이며, 진주라는 도시의 기억과 자존심을 상징하는 장소다.

문화유산은 행정기관의 서류만으로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그 유산을 기억하고 지키려는 시민의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7만여 명의 서명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진주 시민이 촉석루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회적 기록이라고 볼 수 있다.


바로 여기서 ‘단금지교’가 등장한다


사서오경 가운데 하나인 『역경』 계사전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二人同心 其利斷金 同心之言 其臭如蘭.”

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하면 그 날카로움이 쇠를 자를 정도이고, 마음을 같이해 하는 말은 난초처럼 향기롭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나온 고사성어가 단금지교(斷金之交)​다.

두 사람의 마음이 하나가 될 때 쇠도 끊을 만큼 강한 관계가 된다는 의미다.

이를 진주의 상황에 대입하면 의미가 더욱 분명해진다.

촉석루 보물 승격은 진주시만의 사업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진주시, 진주문화원, 문화유산 전문가, 시민사회, 지역 정치권, 경남도, 그리고 국가유산 관련 기관이 각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한쪽에서 자료를 만들고 다른 쪽에서 서명만 하는 방식으로는 부족하다.

역사적 자료는 전문가가 보완하고, 행정은 절차를 챙기며, 시민은 관심을 이어가고, 정치권은 정쟁이 아닌 문화유산의 관점에서 힘을 보태야 한다. 그렇게 마음을 모아야 한다.


이제는 ‘진주의 주장’이 아니라 ‘국가적 검증’의 시간


다만 여기서 냉정하게 짚어야 할 것도 있다.

7만 명이 서명했다고 보물 지정이 자동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지역의 자부심 역시 국가문화유산 지정의 법적·학술적 기준을 대신할 수 없다.

최종 판단은 국가유산청의 전문적인 조사와 심의에 달려 있다.

따라서 진주가 해야 할 일은 “촉석루는 당연히 보물”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보다 왜 보물이어야 하는지를 자료와 논리로 설득하는 것이다.

1960년 재건 과정의 자료를 최대한 확보하고, 당시 복원 과정의 국가적 성격을 객관적으로 입증하며, 촉석루의 건축적·역사적·학술적 가치를 종합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감정이 아니라 기록으로 승부해야 한다.


촉석루 보물 승격, 이제 진주의 자존심만으로는 부족하다


촉석루가 보물로 지정되느냐는 결국 국가유산청의 판단에 달려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진주가 보여줘야 할 자세는 분명하다.

“우리 것이니까 지정해 달라”가 아니라 “이것이 왜 국가가 함께 보존해야 할 문화유산인지 증명하겠다”는 태도다.

이 차이가 중요하다.

진주의 역사이기 때문에 소중한 것은 맞다.

그러나 국가문화유산이 되려면 진주의 역사라는 지역적 의미를 넘어 대한민국 문화유산으로서 어떤 가치가 있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그것이 이번 재도전의 본질이다.

그리고 이미 ‘진주 남강·촉석루 일원’이 국가 명승으로 지정됐다는 사실은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남강의 절벽 위에 선 촉석루. 그 아래에는 의암이 있고, 주변에는 진주성이 있다.

여기에 임진왜란의 역사와 논개의 정신, 전쟁으로 소실됐다가 다시 세워진 복원의 역사까지 겹쳐 있다.

이 정도의 이야기를 가진 공간이라면 이제 필요한 것은 목소리의 크기가 아니다. 얼마나 정확하게 증명하느냐가 관건이다.


‘단금지교’의 힘으로, 그러나 냉정하게


진주 시민이 촉석루를 아끼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문화유산의 가치는 애향심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시민의 마음과 전문가의 냉정한 검증이 함께 가야 한다.

단금지교의 의미처럼 마음을 하나로 모으되, 그 과정은 철저하게 객관적이어야 한다.

진주가 원하는 것은 단순한 ‘보물’이라는 이름표가 아닐 것이다.

천년의 역사와 전쟁의 상처, 1960년 재건의 기억, 그리고 오늘날까지 이어진 시민의 보존 의지가 국가의 기록 속에 제대로 남는 것일 것이다.

촉석루는 이미 한 번 국보였다.

그리고 전쟁으로 그 지위를 잃었다.

이제 다시 국가문화유산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이번에는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데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왜 촉석루가 다시 국가가 함께 지켜야 할 문화유산인지, 진주가 자료와 역사로 답해야 한다.

쇠도 자를 만큼 강한 마음이 모였다면, 이제 그 마음을 기록과 고증, 객관적인 가치 입증으로 바꿔야 할 때다.

그것이 촉석루 보물 승격을 향한 진주의 진짜 ‘단금지교(斷金之交)​’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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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방주 기자 (jinju.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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