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에는 오랜만에 만난 가족과 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자연스럽게 술잔이 오가고, 평소보다 많은 양의 술을 짧은 시간에 마시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문제는 “평소 심장이 건강하니까 하루쯤은 괜찮겠지”라는 생각이다.
심장질환이 없던 건강한 사람도 단시간에 과음하면 심장의 전기적 리듬이 흔들릴 수 있다. 더 주의해야 할 부분은 술을 마시는 순간보다 술자리가 끝난 뒤 휴식을 취하거나 잠을 자는 시간에 위험한 부정맥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건강한 젊은 성인도 과음하자 심박수 상승
국제학술지 유럽심장저널(European Heart Journal)에 발표된 독일 뮌헨대병원 연구팀의 2024년 연구는 이 같은 위험성을 보여준다.
연구팀은 심장 건강에 특별한 이상이 없는 젊은 성인 193명, 평균 연령 29.9세를 대상으로 48시간 동안 휴대용 심전도 장치를 이용해 심장 박동을 연속적으로 관찰했다.
참가자들은 음주 전부터 음주 시간대, 음주 후 회복기, 다음 날까지 추적 관찰됐다.
그 결과 평균 심박수는 음주 초기 분당 89.5회에서 음주 4시간째 97.0회까지 상승했다. 음주량이 많을수록 심방에서 빠른 전기신호가 발생하는 심방빈맥도 증가했다.
심실에서 정상 박동보다 일찍 수축하는 심실 조기수축 역시 음주 시간대에 상대적으로 많이 나타났다.
즉, 과음은 단순히 다음 날 머리가 아프고 속이 불편한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심장의 전기적 리듬 자체를 흔들 수 있다는 뜻이다.
더 무서운 시간은 ‘술자리 이후’였다
이번 연구에서 특히 주목할 대목은 음주가 끝난 뒤였다.
전체 참가자 193명 가운데 10명, 5.2%에서 임상적으로 주목할 만한 부정맥이 관찰됐다.
심방세동과 심실빈맥 등을 포함한 주요 부정맥은 오히려 음주가 끝난 뒤 6~19시간의 회복기에 주로 발생했다.
한 26세 남성은 마지막 술을 마신 뒤 약 13시간이 지나 처음으로 심방세동이 발생했다. 이 증상은 약 79분간 지속된 뒤 자연스럽게 정상 리듬으로 돌아왔다.
또 다른 53세 여성과 27세 남성에게서는 음주 후 회복기에 비지속성 심실빈맥이 나타났다. 건강한 29세 여성에게서는 15.4초 동안 심장의 전기신호 전달이 일시적으로 차단되는 방실차단도 관찰됐다.
“술을 다 마셨으니 이제 괜찮다”는 판단이 위험할 수 있는 이유다.
명절 과음 뒤 나타나는 ‘휴일 심장 증후군’
과음 이후 평소 심장질환이 없던 사람에게 갑자기 심방세동 등 부정맥이 발생하는 현상은 의학적으로 ‘휴일 심장 증후군(Holiday Heart Syndrome)’이라고 불린다.
이 용어는 1978년 미국 뉴저지 의대 연구팀이 휴일을 전후해 폭음한 뒤 부정맥으로 입원한 환자들을 분석하면서 처음 제시됐다.
당시에도 뚜렷한 심장질환이 없던 사람에게 휴일 폭음 이후 심방세동을 비롯한 부정맥이 나타나는 특징이 관찰됐다.
독일 뮌헨대 연구팀이 앞서 독일 옥토버페스트 참가자 3,02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서도 급성 음주량이 많을수록 부정맥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는 연관성이 확인됐다.
결국 문제는 술의 종류보다 한꺼번에 얼마나 많이 마시느냐에 있다.
왜 술이 심장 박동을 흔들까
과음이 심장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한다.
그중 하나가 자율신경계의 균형 변화다.
음주와 음주 후 회복 과정에서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균형이 크게 변하면서 심장의 전기적 안정성이 떨어질 수 있다.
여기에 명절에는 과음만 문제가 아니다.
장거리 이동, 수면 부족, 과식, 피로, 생활 리듬 변화 등이 동시에 겹친다. 이런 요인들이 더해지면 심장에 부담을 줄 수 있다.
따라서 명절 건강관리에서 단순히 “술을 적당히 마시라”는 충고만 반복해서는 부족하다.
폭음 자체를 피하고, 술을 마신 뒤에도 일정 시간 동안 자신의 심장 상태를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이런 사람이라면 명절 과음 더 경계해야
다음과 같은 위험요인을 가진 사람은 과음을 더욱 주의할 필요가 있다.
▲ 심방세동 등 부정맥 병력이 있는 사람 ▲ 심혈관질환이 있는 사람 ▲ 고혈압 환자 ▲ 당뇨병 환자 ▲ 비만한 사람 ▲ 고지혈증 등 심혈관질환 위험요인이 있는 사람 ▲ 과거 음주 후 심한 두근거림을 경험한 사람 등이다.
평소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예외는 아니다.
이번 연구가 보여주듯 젊고 건강한 사람에게도 음주 후 부정맥이 관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술자리 다음 날 ‘이 증상’이면 숙취로 넘기지 말아야
명절 술자리 이후 다음 날까지 다음과 같은 증상이 지속된다면 단순한 숙취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리거나 맥박이 불규칙하게 뛰는 경우, 특히 흉통이나 호흡곤란, 심한 어지럼증, 실신 등이 함께 나타난다면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
부정맥 여부는 증상만으로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심전도 검사 등을 통해 확인해야 한다.
특히 실신하거나 심한 흉통·호흡곤란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지체하지 말고 응급의료기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추석 연휴, 술보다 중요한 것은 ‘회복 시간’이다
명절에는 가족과의 술자리 자체를 무조건 피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짧은 시간에 많은 술을 마시는 폭음은 분명히 다른 문제다.
더욱이 술을 마신 직후 괜찮았다는 이유로 안심해서도 안 된다. 연구 결과처럼 음주가 끝난 뒤 수시간이 지나 회복하는 과정에서 부정맥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추석에는 술잔의 횟수보다 음주량과 속도, 그리고 술자리 이후의 수면과 휴식을 함께 살펴야 한다.
명절은 가족을 만나기 위한 시간이지, 과음으로 건강을 시험하는 시간이 아니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쯤 괜찮겠지”라는 방심이 오히려 심장에는 가장 위험한 선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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