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 몇 층만 올라가도 숨이 차고, 또래보다 유독 쉽게 지친다면 단순한 노화가 아니라 질병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 숨이 차는 것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여긴다. 하지만 의료계는 이러한 인식이 국내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관리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지적한다. COPD는 폐 기능이 서서히 망가지는 대표적인 만성 호흡기 질환으로, 한 번 손상된 폐는 원래 상태로 회복되지 않는다.
문제는 질환의 위험성에 비해 국민 인지도가 지나치게 낮다는 점이다.
현재 국내 COPD 환자는 약 300만 명으로 추정되지만 실제 진단을 받은 환자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40세 이상 COPD 진단율은 2.3% 수준으로, 환자 1,000명 가운데 자신의 질환을 알고 있는 사람은 23명뿐이라는 의미다. 대다수 환자들이 만성 기침과 가래, 호흡곤란을 단순한 노화 현상으로 오인한 채 방치하고 있는 셈이다.
더 심각한 사실은 COPD가 단순한 호흡기 질환이 아니라는 점이다.
전 세계적으로 매년 317만 명이 COPD로 사망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COPD를 포함한 만성하기도질환은 주요 사망 원인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급성 악화로 입원한 환자의 경우 3년 내 절반이 사망하고, 7년 후에는 75%가 생존하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는 COPD의 위험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OPD는 여전히 ‘흡연자의 병’이라는 오해에 갇혀 있다.
물론 흡연은 가장 강력한 위험 요인이다. 그러나 환자의 약 13%는 비흡연자다. 미세먼지와 대기오염, 직업성 유해물질 노출, 조산, 태아 시기 간접흡연, 성장기 영양결핍 등 다양한 원인이 COPD를 유발할 수 있다. 특히 미세먼지 문제가 심각한 한국 사회에서 COPD는 더 이상 특정 집단만의 질환이 아니다.
사회적 비용도 막대하다.
국립보건연구원에 따르면 COPD로 인한 국가 경제적 손실은 연간 1조 4천억 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이 간병비와 생산성 손실 등 간접 비용이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우리 사회에서 COPD 환자 증가는 개인의 건강 문제를 넘어 국가적 부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다행히 정부는 올해부터 국가건강검진에 폐기능 검사를 포함시키며 조기 진단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56세와 66세 국민은 의무적으로 폐기능 검사를 받게 되며, 이를 통해 매년 약 15만 명의 신규 환자가 발견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검진 확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조기 발견 이후 환자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1차 의료체계 구축과 COPD에 대한 국민 인식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현재 상당수 환자들이 상급종합병원에 집중되면서 의료자원의 비효율도 나타나고 있다. 경증 환자들이 지역 병·의원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 조성도 시급하다.
정부가 2030년까지 172억 원을 투입해 한국형 COPD 아형 진단기준과 맞춤형 치료기술 개발에 나선 것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 스스로의 경각심이다.
숨이 차는 것은 나이 때문이 아니라 병 때문일 수 있다. 특히 COPD는 침묵 속에서 폐를 파괴하는 질환으로 소위 '침묵의 질병'이기 때문이다. 조기 진단과 예방이 곧 생명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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