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을 자세히 보면, 썩어가는 것만 빼고는 모두 기운이 무성히 살아 있다.
細看萬物 腐臭以外 無非生氣英英
세간만물 부취이외 무비생기영영
- 이덕무(李德懋,1741~1793),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
우리는 하루 건너 하루, 아니 거의 매일 ‘썩은 것’부터 본다. 타임라인에 흐르는 혐오, 비웃음 섞인 댓글, 내려앉는 그래프, 속보로 울리는 범죄 뉴스. 손가락으로 화면을 몇 번씩 쓸어내릴수록 세상은 더 어두워 보인다. 그때 이덕무가 한 줄로 고개를 돌려놓는다. “만물을 자세히 보면, 썩은 것을 빼고는 다 살아 있다.” 냄새가 먼저 와서 코를 잡아끌 뿐, 조금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 주변에 번져 있는 미세한 회복의 기미, 막 나온 잎사귀, 스쳐 가는 미소, 서툰 손길, 어제보다 나은 문장이 조용히, 그러나 끈질기게 자라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 한 줄의 힘은 낙관을 주문처럼 외우게 하지 않는 데 있다. ‘자세히 본다’는 건 감정을 키우는 일이 아니라, 현실을 세밀하게 확인하는 태도다. 썩은 건 강렬하고 즉각적이라 우리의 시선을 독점한다. 하지만 사회도, 조직도, 내 삶도 실제로 움직이는 힘은 거친 부패보다 미세한 생장에 있다. 재현성 조금 나아진 실험, 팀의 사소한 협업 개선, 집에서 건네는 짧은 사과 한마디. 이런 것들이 ‘영영’ 빛나며 번식하는 생기로 세계의 면적을 넓힌다.
오늘의 데이터 환경에서도 이 문장은 정확히 들어맞는다. 알고리즘은 주목을 끄는 ‘부패’를 증폭한다. 클릭은 충격을 좋아하고, 플랫폼은 체류 시간을 사랑한다. 그래서 우리는 현실의 비율을 자주 오해한다. 마치 모든 것이 타락한 듯 느낀다. 이덕무의 처방은 간단하다. 표본을 바꾸라. 더 넓고, 더 느리게 관찰하라. 사건의 극단이 아니라 경향의 누적을 보라. 비난이 아니라 수정, 파괴가 아니라 수선을 기록하라. 관찰의 단위를 바꾸는 순간, ‘썩음’은 국지적 현상으로 줄어들고 ‘생기’는 구조적 사실로 드러난다.
개인에게 이 말은 회복의 기술이 되기도 한다. 우울의 렌즈는 결함을 크게 만든다. 그럴 때 ‘부취 이외’라는 단서를 붙여 오늘의 목록을 다시 적어본다. 실패 옆에 아직 남아 있는 것을 붙인다.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 하나, 고쳐 쓴 문장 한 줄, 규칙적으로 들이킨 숨 몇 번. ‘있는 것’을 수집하는 행위가 곧 생기를 불러오는 루틴이 된다. 회복은 사건이 아니라 서식이라는 사실을 몸으로 배우게 된다.
공공의 자리에서도 이 통찰은 유효하다. 거대한 구호보다 작은 지속의 설계를 먼저 둘 것. 분리수거 규칙 하나 바로잡기, 횡단보도 대기 시간을 세 초 줄이기, 동네 도서관을 밤 아홉 시까지 열기. 작은 것이 쌓여 큰 것을 이긴다는 원리가 바로 ‘영영’이다. 살아 있는 것은 스스로 번식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번식하기 쉬운 선(善)의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결국 이 명구는 세상을 읽는 순서를 바꾸자는 제안이다. 부패는 출발선이 아니라, 나중에 다룰 과제다. 먼저 세밀히 보고, 살아 있는 것을 확인하고, 그다음에 썩은 것을 치우라. 부패는 제거의 대상이지만, 생기는 확대의 대상이다. 우리는 무엇부터 보느냐에 따라 다른 세상을 살게 된다. 이덕무의 말은 우리를 조용히 등 떠민다. “썩은 것을 지나 보라. 그 밖에는 다 자라고 있다.” 오늘의 피로한 감각을 구해낼 용기는 사실, 그 쉬운 순서 바꾸기에서 시작된다.
글쓴이 최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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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한국고전번역원 https://www.itk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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