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가 문화체육관광부의 전국 최초 'K-푸드로드 문화관광 활성화 사업' 공모에 선정된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성과다. 거제시는 앞으로 3년간 국비 14억5천만 원을 포함해 총 29억 원을 투입해 '거제의 밤을 굽다, 순겹살 1592'라는 브랜드를 육성하게 된다.
지역의 역사와 음식, 관광을 결합하려는 시도 자체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임진왜란 최초 승전인 옥포대첩의 역사성과 조선소 노동자들의 삼겹살 회식문화를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낸 발상도 신선하다. 단순한 음식이 아닌 스토리를 담은 관광상품을 만들겠다는 방향성은 최근 관광산업이 추구하는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하지만 기대만큼 우려도 적지 않다.
가장 먼저 고민해야 할 부분은 '왜 하필 삼겹살인가'라는 질문이다. 삼겹살은 대한민국 어디에서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대표 음식이다. 물론 K-푸드의 세계화 측면에서는 인지도가 높지만, 거제만의 고유한 음식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거제는 청정 남해안을 품은 도시다. 싱싱한 해산물과 향토음식, 다찌 문화 등 다른 지역에서는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식문화 자산이 풍부하다. 그런데도 전국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삼겹살을 대표 브랜드로 내세운다면 오히려 거제만의 개성이 희석될 가능성이 크다.
사업 내용 역시 다소 이벤트 중심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삼겹살 굽기 자격증인 'GRILL LICENSE', 각종 굿즈 제작, 인플루언서 마케팅, 버스킹 공연 등은 관광객의 흥미를 끌 수는 있다. 그러나 이런 프로그램이 사업 종료 이후에도 방문객을 꾸준히 불러들이는 경쟁력이 될지는 의문이다. 관광은 행사 하루의 재미보다 다시 찾고 싶은 이유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외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전략도 냉정한 검증이 필요하다. K-팝과 K-드라마처럼 세계적인 콘텐츠와 연계되지 않는다면 삼겹살 자체만으로 해외 관광객을 지속적으로 유인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에게 삼겹살은 한 번쯤 경험하는 음식일 수는 있지만, 거제를 반드시 찾아야 할 결정적인 이유가 되기에는 부족하다. 결국 음식보다 역사와 바다, 조선산업, 자연경관이 함께 어우러지는 복합적인 관광 콘텐츠가 뒷받침돼야 한다.
또 다른 문제는 지역 파급효과다. 이번 사업은 옥포동과 아주동 일원에 집중된다. 조선소 근로자들의 회식문화라는 지역적 특성을 살리는 것은 의미 있지만, 거제 전역의 관광 활성화나 경남 전체의 경제적 효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특정 거리 하나를 브랜드화하는 데 그친다면 관광객의 체류시간과 소비 확대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관광은 이름을 바꾼다고 성공하지 않는다. 브랜드는 예산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방문객의 기억 속에서 완성된다. '순겹살 1592' 역시 단순히 삼겹살을 새로운 이름으로 포장하는 데 머문다면 또 하나의 단기 사업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29억 원의 예산이 진정한 성과를 내려면 거제만의 역사와 바다, 조선산업, 남해안 식문화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지속 가능한 관광 생태계를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삼겹살은 시작일 수는 있지만, 결코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번 사업의 성공 여부는 '얼마나 많은 행사를 열었는가'가 아니라 '거제를 다시 찾는 관광객이 얼마나 늘었는가'로 평가받아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화려한 브랜드보다 거제만이 보여줄 수 있는 진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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