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진정신에서 시작된 대아고등학교…독립운동이 교육으로 이어지다
경남을 대표하는 사학 명문 대아고등학교의 교명 '대아(大亞)'는 단순한 학교 이름이 아니다. 그 안에는 일제강점기 조국의 독립을 염원했던 한 청년의 항일정신과 광복 이후 교육으로 나라를 다시 세우겠다는 건학 철학이 담겨 있다.
대아고등학교의 설립자 아인(雅仁) 박종한 선생은 일제강점기였던 1943년, 육당 최남선이 저술한 『조선역사』를 접하면서 우리 민족의 역사와 정체성에 깊은 충격을 받았다. 당시 식민지 교육 속에서 성장했던 그는 단군조선의 역사와 민족의 뿌리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조국 독립에 대한 강한 신념을 품게 된다.
특히 『조선역사』에 등장하는 "해 돋는 동방을 진(震)이라 불렀다"는 기록은 박종한 선생에게 깊은 영향을 남겼다. 그는 단군이 세운 나라를 '진(震)'으로 이해하며, 식민지 조국이 다시 본래의 나라를 회복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진나라로 돌아가자(般震)'라는 신념을 세웠다.
19세 청년이 조직한 항일 비밀결사 '반진단'
1944년 10월 3일.
당시 열아홉 살이던 박종한 선생은 부산 영주동에서 최소해, 김대성, 윤치원, 최진원 등 뜻을 함께하는 청년들과 함께 항일 비밀결사인 '반진단(般震團)'을 결성했다.
표면적으로는 친목단체였지만 실제 목적은 조국 독립이었다.
반진단은 일제의 감시망 속에서 독립운동을 준비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부산경찰서 고등계에 발각됐다. 단원 전원이 체포되어 혹독한 조사를 받았으며, 당시 초등학교 교사였던 박종한 선생도 수업 도중 학생들 앞에서 연행되는 아픔을 겪었다.
그러나 1945년 광복이 찾아오면서 반진단 단원들은 모두 자유를 되찾았다.
독립운동에서 교육운동으로 이어진 건학정신
광복 이후 박종한 선생은 새로운 고민에 직면했다.
나라를 되찾았지만 나라를 이끌 지도자가 부족하다는 현실이었다.
그는 총과 무기가 아닌 교육이야말로 국가를 바로 세우는 가장 강력한 힘이라고 판단했다.
1946년 4월 8일.
광복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반진단 동지들은 진주 중안동 박종한 선생 자택에 다시 모였다.
이 자리에서 그들은 "조국의 통일과 자유는 아시아의 독립과 자유 속에서 완성된다"는 시대 인식을 공유하며 교육기관 설립을 결의했다.
바로 이때 탄생한 이름이
'대아(大亞)'였다.
대아는 단순히 '큰 아시아'라는 의미를 넘어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 전체를 바라보는 지도자를 양성하겠다는 교육 철학을 담고 있었다.
교명 '대아'가 담고 있는 시대정신
설립자 박종한 선생은 해방 직후 좌우 이념 대립이 심화되던 현실을 바라보며 우리 민족의 미래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아시아 전체의 운명과 연결되어 있다고 판단했다.
이는 중국 혁명가 손문의 "중국의 운명은 아시아의 운명과 같다"는 사상에서도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철학은 훗날 대아고등학교 교가에 담긴
"동트는 아시아의 새등불"이라는 가사로 이어졌다.
이는 단순한 문학적 표현이 아니라 아시아의 미래를 이끌 지도자를 길러내겠다는 건학 이념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반진정신
박종한 선생이 꿈꾸었던 반진정신은 단순한 항일 독립운동에 머물지 않았다.
독립운동은 교육운동으로, 교육운동은 인재양성으로 이어졌다.
'반진정신'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과 올바른 역사 인식, 공동체를 위한 책임의식을 갖춘 지도자를 길러내겠다는 대아고등학교 건학정신의 근간으로 이어지고 있다.
오늘날 대아고등학교가 경남을 대표하는 명문 사학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로 이러한 교육철학과 역사적 가치가 자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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