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 9기가 출범했다. 박완수 경남도지사가 지난 8일 경남도청 도정회의실에서 민선 9기 출범 이후 첫 도지사 주재 기자간담회에서 제시한 화두는 분명했다. '도민과 함께 경남 대도약'. 제조 인공지능(AI), 소형모듈원전(SMR), 우주항공산업, 북극항로 첨단물류도시, 부산·경남 행정통합까지 미래를 겨냥한 굵직한 프로젝트가 도정의 중심축으로 제시됐다.
방향은 맞다. 경남은 제조업 기반이 탄탄하고 우주항공과 방산, 원전 산업이라는 전국 최고 수준의 산업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여기에 AI를 접목하고 글로벌 물류와 연결한다면 경남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지방정부가 단순한 행정기관을 넘어 미래 산업을 설계하는 플랫폼으로 변모하겠다는 의지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비전만으로 지역의 미래가 바뀌지는 않는다.
가장 큰 현실은 재정의 한계다. 경남도 예산은 14조 원 규모지만, 인건비와 법정경비, 국비 매칭사업 등을 제외하면 도가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재원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지방정부가 정책을 설계해도 재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결국 중앙정부 사업을 집행하는 수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는 지방자치의 근본적인 구조적 한계이기도 하다. 지역이 필요한 정책을 지역이 결정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경남형 복지'와 미래산업 육성은 속도를 내기 어렵다. 결국 진정한 지방시대를 위해서는 예산뿐 아니라 권한까지 함께 이양돼야 한다.
부산·경남 행정통합 역시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행정통합은 단순히 행정구역을 합치는 일이 아니다. 중앙정부로부터 실질적인 재정권과 인사권, 산업정책 권한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새로운 조직만 하나 더 만드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주민투표를 통과해야 하는 절차적 과제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지역 주민들이 통합의 필요성과 실질적인 이익을 체감할 수 있어야 한다.
산업정책도 긴 호흡이 필요하다.
제조 AI 전환, 우주항공, SMR, 북극항로는 모두 수년이 아니라 수십 년을 내다봐야 하는 국가 전략사업이다. 그러나 지방정부는 4년 단위의 정치 일정 속에서 성과를 요구받는다. 장기 투자가 필요한 사업일수록 단기 성과에 흔들리지 않는 정책 일관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박 지사가 "보여주기식 행정을 하지 않겠다"고 밝힌 점은 긍정적이다. 다만 도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와 미래 투자 사이에서 균형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는 앞으로의 리더십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다.
행정 혁신도 쉽지 않은 과제다.
도지사 핫라인 운영, 조직 생산성 향상, 산하기관 개혁은 행정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방향이다. 하지만 조직 개편은 언제나 이해관계와 충돌한다. 산하기관 운영체계 개선과 기능 조정, 성과 중심 운영이 추진될수록 내부 반발 역시 불가피하다. 혁신은 선언보다 설득이 중요하고, 속도보다 공감이 우선되어야 한다.
민선 9기의 출발은 희망적이다. 그러나 거대한 청사진이 성공하려면 세 가지 조건이 반드시 충족돼야 한다. 첫째, 중앙정부의 실질적인 권한과 재정 이양이다. 둘째, 정권이나 지방선거와 관계없이 이어지는 정책의 연속성이다. 셋째, 도민과 공직사회 모두가 공감하는 협력 체계다.
경남은 지금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미래산업을 선도하는 지역으로 도약할 것인지, 아니면 비전만 남긴 채 현실의 벽에 가로막힐 것인지는 이제 실행력에 달려 있다.
민선 9기의 성공은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도민이 일상에서 변화를 체감하는 정책으로 완성된다. '경남 대도약'이라는 구호가 역사에 남으려면, 지금부터는 비전보다 실천이 먼저여야 한다. 즉, '경남 대도약'은 선언이 아니라 실행으로 증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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