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는 끝났지만 민심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유권자들은 정당과 후보, 정책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한 표를 행사했다. 그러나 당선된 지 불과 한 달여 만에 탈당과 복당, 입당이 이어지면서 일부 지방의회는 선거 당시와 전혀 다른 정치 지형으로 재편되고 있다. 결국 당선은 유권자가 시켰는데, 당적을 스스로 바꾼 셈이다.
사천시의회, 밀양시의회, 함양군의회, 산청군의회에서 벌어진 잇따른 '당 바꾸기'는 단순한 정치적 선택으로 보기 어렵다. 시점이 공교롭다. 모두 의장단 선거를 전후해 이뤄졌고, 결과적으로 의장 선출 구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유권자의 선택이 왜곡됐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정치인은 헌법상 정당 선택의 자유를 가진다. 탈당도, 입당도 법적으로는 허용된 권리다. 그러나 법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이 곧 정치적으로 정당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유권자는 특정 후보 개인만이 아니라 그 후보가 내세운 정당의 가치와 공약, 정치적 책임까지 함께 선택한다. 선거 직후 의장 자리를 둘러싸고 당적을 바꾸는 모습은 정치적 신념의 변화라기보다 권력 재편을 위한 전략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지방의회 의장은 단순한 명예직이 아니다.
의장은 의회를 대표하고 본회의를 주재하며 의사일정을 조정하는 권한을 가진다. 의회사무기구에 대한 인사권과 조직 운영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의회 운영 전반을 총괄하는 사실상 지방의회의 최고 책임자다. 업무추진비와 관용차량, 대외 대표권 등 상징성과 실질적 권한도 적지 않다.
이처럼 권한이 큰 자리인 만큼 의장 선거를 둘러싼 경쟁이 치열한 것은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그 경쟁이 유권자의 선택을 뒤집는 방식으로 진행될 때다.
사천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당선된 의원이 의장 선거 직전 탈당해 의장에 선출됐다. 밀양에서는 국민의힘 의원의 탈당으로 민주당 의장이 탄생했다. 함양에서는 무소속으로 당선된 의원이 민주당에 입당한 뒤 의장 선거에 나섰고, 산청에서는 무소속 의원들이 국민의힘으로 복당하면서 의회 구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모두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을 수 있다. 그러나 정치는 법 이전에 신뢰다.
유권자는 선거를 통해 의회의 권력 구성을 결정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 의회는 개원도 하기 전에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유권자의 표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사용된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전반기와 후반기 의장 선거 때마다 탈당과 복당, 합종연횡이 반복되는 것은 이미 지방의회의 고질적인 병폐가 됐다. 정책 경쟁보다 자리 경쟁이 우선되고, 정치 철학보다 의장 선출이 정치의 목적이 되는 순간 지방자치는 신뢰를 잃는다.
정당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공천 과정에서의 갈등과 선거 이후의 느슨한 당 기강은 결국 이런 현상을 반복시키는 원인이 된다. 당선 이후 당적 변경에 대한 윤리적 기준과 내부 규율을 강화하지 않는다면 비슷한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제도적 보완도 고민할 시점이다.
선거 직후 일정 기간 당적 변경을 제한하거나, 의장단 선거 직전의 탈당·복당에 대한 윤리심사 강화 등 다양한 개선 방안이 논의될 필요가 있다. 정치적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유권자의 선택을 존중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지방자치의 신뢰를 높이는 길이다.
민주주의는 선거 당일 끝나는 것이 아니다. 선거 이후에도 유권자와의 약속을 지키는 과정까지 포함해 민주주의다.
당적은 정치인의 자유일 수 있다. 그러나 신뢰는 유권자의 권리다.
지방의회가 진정으로 주민을 대표하는 기관이라면, 의장 자리를 위한 정치공학보다 유권자의 선택을 먼저 존중해야 한다. 지방자치는 권력을 나누는 제도가 아니라, 민심을 끝까지 책임지는 제도여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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