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아의 어머니' 효산 강영규, 명문 대아고를 만든 숨은 주역
대아고등학교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설립자인 아인(亞人) 박종한 교장이다. 그러나 아인의 교육철학을 학교 현장에서 실천하며 오늘날 대아고등학교가 지역을 대표하는 명문 사학으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교육자가 있다. 바로 효산(曉山) 강영규 선생이다.
교육계와 동문들은 지금도 "아인이 대아의 아버지라면 효산은 대아의 어머니"라고 말한다. 학교를 설립한 사람이 아인이라면, 학교를 지키고 성장시킨 사람은 강영규였다는 의미다.
폐교 위기 속 대아를 선택한 교육자
1954년 설립된 대아중·고등학교는 전쟁 직후 열악한 사회·경제적 환경 속에서 심각한 재정난을 겪었다. 당시 많은 사립학교들이 운영난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대아고등학교 역시 폐교를 고민해야 할 정도로 상황이 어려웠다.
이 같은 위기 속에서 학교 운영을 맡기 위해 초빙된 인물이 강영규였다.
1925년 9월 22일 남해군 고현면 갈화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1949년부터 고향 남해에서 교직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1956년 4월 1일 대아중학교 교감으로 부임하며 대아와 평생의 인연을 맺었다.
강영규는 설립자인 박종한 교장의 교육철학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했고, 학교 운영과 교육현장을 안정적으로 이끌며 건학 이념이 흔들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았다.
"대아의 오늘은 효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당시 함께 근무했던 박창제 교사는 강영규 선생을 이렇게 회고했다.
"효산 선생은 절대 남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꾸짖지 않았습니다. 늘 조용한 성품으로 솔선수범했고 누구보다 부지런했습니다. 효산이 대아에 없었다면 오늘날 누구나 인정하는 명문 사학 대아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이 증언은 강영규 선생의 교육철학이 권위가 아닌 배려와 실천에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안녕하십니까'가 만든 명문학교의 품격
1968년 대아고등학교 초대 교감으로 부임한 강영규는 이후 11년 동안 학교 운영을 책임졌다.
그가 가장 강조한 것은 성적이 아니라 인성교육이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반복적으로 다음 네 가지 인사말을 생활화했다.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하루에 같은 선생님을 여러 번 만나더라도 반드시 인사하도록 지도했다.
이러한 교육은 학생들의 예절과 인성을 자연스럽게 길러주었고, 당시 교육계에서는 "대아고 학생들은 인사를 참 잘하는 학생들"이라는 평가가 이어졌다.
손수건 교육…50년 앞선 환경교육과 가정교육
강영규 선생의 대표적인 교육 가운데 하나가 손수건 사용 생활화였다.
학생들은 매일 손수건을 지참해야 했고 학교에서는 손수건 검사까지 실시했다.
단순한 청결교육이 아니었다.
그는 손수건 사용이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는 환경교육이라고 강조했다.
더 나아가 손수건은 부모와 자녀를 이어주는 소통의 도구라고 설명했다.
강영규 선생은 생전에 이렇게 말했다.
"학생이 집에 가서 어머니에게 '내일 가져갈 손수건을 빨아 주세요'라고 말하고, 어머니는 깨끗이 빨아주며 학교 잘 다녀오라고 이야기합니다. 손수건 하나가 부모와 자녀를 대화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오늘날 강조되는 환경교육과 인성교육, 가족 간 소통의 중요성을 이미 수십 년 전 교육 현장에서 실천한 셈이다.
정의와 원칙을 지킨 학교 운영
강영규 선생은 학교 운영에서도 원칙을 지켰다.
당시 일부 사립학교에서는 교사 채용 과정에서 부정이 관행처럼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아고등학교만큼은 예외였다.
그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공정성과 정의를 포기하지 않았고, 교사들을 공개적으로 질책하지 않으며 인격을 존중하는 리더십을 실천했다.
이러한 학교 문화는 훗날 대아고등학교가 교육계에서 신뢰받는 사학으로 자리 잡는 밑거름이 됐다.
한국교육자상 수상…평생 교육자로 살다
강영규 선생의 헌신은 교육계에서도 높이 평가받았다.
1982년에는 한국일보 한국교육자상(스승의 상)을 수상하며 평생 실천해 온 교육철학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1980년 대아중학교 교장을 맡았고, 1993년 다시 대아고등학교 교장으로 부임해 1999년 퇴임할 때까지 학교 발전을 위해 헌신했다.
강신화 전 경남교육감 "아인이 아버지라면 효산은 어머니"
강영규 선생과 함께 대아의 초창기를 이끌었던 강신화 전 경남도교육감은 그의 역할을 누구보다 높이 평가했다.
강 전 교육감은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에도 아인의 '반진구국(般震救國)' 교육철학이 흔들리지 않았던 것은 강영규 교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회고했다.
또한 자신이 경남교육감으로 재임했던 시절 추진한 교사 존중 문화와 학생 중심 교육, 긍정적 사고를 강조한 교육정책 역시 강영규 선생의 학교경영 철학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도 제자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한다.
"아인이 대아의 아버지라면 강영규 교감은 대아의 어머니이다."
대아를 지켜낸 또 한 명의 설립자
학교는 건물보다 사람이 만든다.
아인 박종한 선생이 대아의 건학 이념을 세웠다면, 효산 강영규 선생은 그 정신이 교육 현장에서 살아 숨 쉬도록 평생 실천한 교육자였다.
인성교육, 청렴한 학교 운영, 교사 존중, 학생 사랑.
오늘날 대아고등학교가 지역을 대표하는 명문 사학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은 아인의 철학과 효산의 실천이 함께 만들어낸 결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아의 어머니'라는 별칭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평생을 대아와 함께하며 학교를 품고, 사람을 키워낸 한 교육자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이상의 자료는 2016년 발간된 '대아고등학교오십년사'를 참고했음을 분명히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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