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기다리는 농정으로는 기후위기를 이길 수 없다
올해 경남의 농촌은 "비가 너무 많이 와도 걱정이고, 비가 오지 않아도 걱정"이라는 말이 현실이 됐다. 최근 장마철이지만 여름철 정체전선 부재에 따른 ‘마른장마’ 현상이 계속되면서 농업용 저수지는 빠르게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경남의 평균 농업용 저수율은 48%로 평년의 75%에 크게 못 미치고 있으며, 밀양은 이미 농업가뭄 '경계' 단계에 들어섰다. 일부 저수지는 저수율이 30%에도 미치지 못하는 심각한 상황이다.
이에 경상남도는 21일 밀양시 초동면 봉황리 일원 와지저수지 현장 점검과 23일 시군별 가뭄대응체계를 점검하고 조치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긴급 영상회의를 열고 비상 용수 공급 체계를 가동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관정 개발과 저수지 준설, 양수시설 점검, 긴급 예산 투입 등 가능한 대책을 서둘러 시행하고 있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농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행정의 신속한 대응은 반드시 필요한 조치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지금의 대응은 '예방'보다 '응급처치'에 가깝다. 가뭄이 심해질 때마다 관정을 뚫고 양수기를 돌리며 긴급 급수에 나서는 방식은 매년 반복되는 임시방편일 뿐이다. 기후변화가 일상이 된 시대에 과거와 같은 대응 체계로는 농업재난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기후위기의 양상이 갈수록 극단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폭우가 쏟아질 때는 농경지가 침수되고, 비가 멈추면 곧바로 가뭄이 시작된다. 여기에 폭염까지 겹치면서 벼와 밭작물은 물론 축산농가까지 복합적인 피해를 입고 있다. 이제 가뭄은 단순한 물 부족이 아니라 농업 생산성과 지역경제를 위협하는 복합재난으로 인식해야 한다.
경남도는 올해 41개 사업에 12억 원을 투입해 관정 개발과 저수지 준설 등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기후위기를 감안하면 투자 규모와 대응 방식 모두 재검토가 필요하다. 노후 저수지의 기능 개선, 스마트 물관리 시스템 구축, 빗물 저장시설 확대, 용수 재이용 기술 도입 등 중장기적인 물 관리 정책이 함께 추진돼야 한다.
또한 농업용수 확보는 특정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저수율이 낮아질 때마다 시군이 개별적으로 대응하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도와 시군, 한국농어촌공사, 정부가 데이터를 공유하고 실시간으로 대응하는 통합 물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가뭄을 예측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농민들은 매년 같은 불안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기후는 더 이상 과거의 기준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비가 오기를 기다리는 농정에서 벗어나, 비가 오지 않아도 농업이 유지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행정의 새로운 과제가 되어야 한다.
가뭄은 자연현상이지만 피해는 정책으로 줄일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일시적인 비상급수가 아니라 기후위기에 맞는 지속 가능한 농업용수 관리 시스템이다. 올해의 가뭄을 넘기는 데 만족한다면, 내년에도 같은 걱정을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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