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을 피하는 문화와 세금을 책임으로 보는 문화의 차이
부동산 보유세는 언제나 한국 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정책 가운데 하나다. 세금을 올리면 '징벌 과세'라는 비판이 나오고, 낮추면 '부자 감세'라는 반발이 이어진다. 정부가 1주택 실거주자의 부담은 줄이고 초고가 주택과 다주택자의 세 부담을 높이는 차등 과세를 검토하는 것도 이처럼 첨예하게 갈린 이해관계 속에서 균형점을 찾으려는 시도다.
그런데 최근 영국에서는 흥미로운 장면이 연출됐다. 영화감독 리처드 커티스, 방송인 게리 리네커를 비롯한 부유층 인사들이 정부에 공개서한을 보내 "우리에게 세금을 더 걷어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들이 주장한 대상은 평범한 노동자가 아니라, 노동소득보다 자산에서 더 많은 수익을 얻는 초고액 자산가들이었다.
물론 영국과 한국의 세제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두 나라의 조세 구조와 복지 체계, 부동산 시장, 국민 부담률은 서로 다르다. 그럼에도 이번 사례는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세금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은 왜 이렇게 다른가.
한국에서는 보유세 논의가 시작되면 곧바로 '얼마를 더 내느냐'에 초점이 맞춰진다. 반면 영국 일부 부유층은 "사회가 지속 가능하려면 더 많은 사람이 책임을 나눠야 한다"는 논리를 앞세운다. 단순히 세금을 더 내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자산이 많은 사람이 사회적 책임도 더 져야 한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관점이다.
반대로 한국에서는 세금을 회피하는 방법이나 절세 전략이 하나의 투자 기술처럼 소비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6월 1일 보유세 기준일을 앞두고 잔금일과 등기일을 조정하는 절세 전략이 자연스럽게 공유되고, 세 부담을 줄이는 것이 곧 재테크의 일부처럼 받아들여진다. 물론 합법적인 절세는 납세자의 권리다. 그러나 세금을 공동체를 유지하는 비용이 아니라 반드시 줄여야 할 손실로만 바라보는 문화 역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보유세를 무조건 올리는 것이 정답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세금은 공정해야 한다. 실거주 목적의 1주택자와 투기 목적의 초고가·다주택자를 같은 기준으로 과세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 따라서 실수요자는 보호하고, 투기성 자산에는 더 큰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핀셋형 보유세'는 충분히 검토할 가치가 있다.
동시에 정부도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국민은 세금 자체보다 세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에 더 민감하다. 걷은 세금이 낭비되지 않고 주거 안정과 교육, 복지, 사회안전망 강화에 투명하게 사용된다는 믿음이 있어야 조세 저항도 줄어든다. 공정한 과세와 책임 있는 재정 운영은 함께 가야 한다.
영국 부유층의 공개서한은 세금을 더 내겠다는 선언 이전에 "부는 권리만이 아니라 책임도 함께 따른다"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우리 사회 역시 보유세를 둘러싼 찬반 논쟁을 넘어, 어떤 조세가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지에 대한 성숙한 논의가 필요하다.
세금은 국가가 국민에게서 빼앗는 돈이 아니라,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사회적 약속이다. 그 약속을 신뢰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조세 정의도, 시장의 신뢰도 함께 살아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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