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갈사산단, 실패한 사업보다 더 큰 문제는 '책임 없는 행정'이다
행정은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어도,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하동 갈사산업단지 내부 간선도로 개설사업은 이미 2020년 정부가 총사업비 관리 대상에서 제외하면서 사실상 종료된 사업이었다. 그러나 경상남도는 '대체 사업자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불확실한 기대를 이유로 국고보조금 정산을 미뤘고, 그 결과 도민의 혈세 8,553만 원이 이자로 국고에 반납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다.
문제는 돈의 규모만이 아니다. 더 심각한 것은 예견 가능한 손실을 방치했음에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행정 문화다.
'혹시나'를 기다리다 '역시나' 혈세만 날렸다
갈사산단은 한때 동남권 신성장 거점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2014년 공사가 중단됐고, 2018년 사업시행자가 파산하면서 사실상 사업은 좌초됐다. 여기에 2020년 산업통상자원부가 총사업비 관리 대상에서 제외하면서 국가사업으로서도 공식 종료됐다.
상식적으로 보면 이 시점에서 행정은 정산 절차를 마무리했어야 한다.
그러나 경남도는 대체 사업자 확보 가능성을 이유로 국비 반납을 계속 유예했다.
결과는 명확했다.
사업은 재개되지 않았고, 국비는 은행 계좌에 장기간 묶여 있었으며, 정산이 늦어진 8년 7개월 동안 발생한 이자 8,553만 원까지 국고에 반납하게 됐다.
'기다림'은 아무런 성과도 만들지 못했고, 결국 손실만 키웠다.
행정이 희망을 갖는 것과 근거 없는 기대에 매달리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문제의 본질은 8,553만 원이 아니라 '관리 실패'다
이번 사안을 단순히 이자 손실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갈사산단 내부 간선도로 개설사업 반납 예산은 총 19억9,800만 원이다.
이 가운데 19억1,200만 원은 국비 미매칭에 따른 원금, 8,553만 원은 정산 지연으로 발생한 이자다.
8,553만 원은 숫자로 보면 전체 예산의 일부일 수 있다.
그러나 행정의 신뢰는 금액으로 판단되지 않는다.
사업 종료 후 정산을 제때 했더라면 발생하지 않았을 비용이라는 점에서 이는 명백한 행정 실패 비용이다.
도민 입장에서는 "피할 수 있었던 손실을 왜 세금으로 부담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책임지는 사람 없는 행정'이 반복되는 이유
더 큰 문제는 이런 사례가 반복돼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사업이 실패할 수도 있다.
예산이 변경될 수도 있다.
하지만 사업 종료 이후 5년 가까이 정산을 미루고, 국회와 도의회의 지적을 받은 뒤에야 뒤늦게 움직이는 행정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관리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
누가 정산을 미뤘는지,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 그 과정에서 위험성은 검토됐는지에 대한 설명과 책임은 찾아보기 어렵다.
결국 손실은 도민이 부담하고, 행정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넘어간다면 같은 문제는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
행정의 가장 큰 적은 실패가 아니라 책임지지 않는 문화다.
갈사산단의 표류, 이제는 산업정책도 재설계해야
갈사산단은 조선산업 호황기에 추진된 대규모 산업단지였다.
하지만 산업 환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세계 조선산업 구조가 변화했고, 탄소중립과 RE100, 분산에너지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산업단지의 역할도 달라지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과거 계획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맞는 새로운 전략이다.
갈사산단을 친환경 에너지 산업, 해상풍력, 수소산업, 분산에너지 특화지역 등 미래산업 거점으로 전환하고, 투자 유치 전략도 전면 재설계해야 한다.
표류하는 산업단지는 지역경제의 성장 동력이 아니라 지역의 부담이 될 뿐이다.
재정관리 시스템도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번 사태는 특정 사업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국고보조금 관리체계 전반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앞으로는 사업이 중단되거나 종료될 경우 일정 기간 내 정산을 의무화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또한 국비가 장기간 방치돼 불필요한 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재정 리스크 조기경보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국고보조금은 국가와 국민이 맡긴 공공재원이다.
행정은 이를 '언젠가 쓸 수도 있는 돈'이 아니라 반드시 책임 있게 관리해야 할 국민의 세금으로 인식해야 한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행정'이야말로 가장 큰 낭비다
갈사산단 사태의 본질은 8,553만 원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큰 문제는 사업이 끝난 뒤에도 결정을 미루고, 손실이 발생한 뒤에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행정 문화다.
행정은 가능성을 검토할 수는 있지만, 근거 없는 희망으로 세금을 묶어둘 권한은 없다.
국민의 세금은 행정의 실험비도, 시간 끌기의 대상도 아니다.
경상남도는 이번 일을 단순한 정산 절차의 실수로 넘겨서는 안 된다.
왜 정산이 지연됐는지, 의사결정 과정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은 무엇인지 도민 앞에 투명하게 설명해야 한다.
신뢰받는 행정은 실수를 하지 않는 조직이 아니라, 실수에 책임지고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 조직이다.
갈사산단이 남긴 가장 큰 교훈은 산업단지의 실패가 아니라 책임을 미루는 행정이야말로 가장 큰 사회적 비용이라는 사실이다.
암튼 도민의 혈세는 행정의 안일함을 대신 치르는 보험금이 아니지 않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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