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교육공동체'는 사라지고 '지역사회학교'가 온다…경남교육의 새로운 실험
경상남도교육청이 전임 교육감 시절 역점사업이었던 미래교육지구와 행복마을학교를 통합해 '경남형 지역사회학교 프로젝트'로 전면 개편하기로 했다.
표면적으로는 명칭 변경과 사업 재편이지만, 본질은 지난 수년간 이어진 정치적 갈등과 교육 철학의 충돌을 정리하는 정책 전환이다.
특히 경남교육청이 경남도의회를 상대로 제기했던 '경남 마을교육공동체 활성화 지원 조례 폐지 무효 확인 소송'을 스스로 취하한 것은 단순한 법적 절차가 아니라 대립에서 협치로 방향을 전환하겠다는 정치적 선언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사업의 이름을 바꾸는 것만으로 과거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이번 개편은 공교육의 신뢰를 회복하고 지역교육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기존 사업을 포장만 바꾼 정책으로 끝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치 편향 논란이 남긴 깊은 상처
마을교육공동체 사업은 출범 당시 학교 밖 교육자원을 활용해 지역과 학교를 연결한다는 취지로 시작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일부 마을강사의 정치적 편향성 논란과 교육 내용의 공정성 문제가 제기됐고, 교육 현장은 교육보다 이념 논쟁의 장으로 변질됐다는 비판을 받았다.
결국 경남도의회는 2024년 정치적 중립성 훼손을 이유로 관련 조례를 폐지했고, 예산까지 전액 삭감하는 초강수를 선택했다.
이에 경남교육청은 대법원 소송으로 맞섰지만, 결과적으로 학생들은 교육보다 정치적 대립의 한가운데 놓였다.
교육은 특정 이념을 확산하는 수단이 아니라 학생의 성장을 위한 공공서비스라는 점에서 당시 갈등은 교육행정이 반드시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이름만 바뀌어서는 신뢰는 회복되지 않는다
경남교육청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통해 학교 중심 운영과 지자체 역할 분담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교육청은 교육과정을 지원하고, 지방자치단체는 지역 교육 인프라와 특색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역할 분담은 방향성 자체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도민들이 궁금한 것은 사업 명칭이 아니라 운영 방식이다.
만약 기존 프로그램과 운영 인력, 예산 구조가 대부분 유지된다면 '지역사회학교'라는 새로운 이름은 사실상 간판만 바꾼 정책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정책의 연속성은 필요하지만, 문제가 있었던 운영 방식까지 그대로 답습해서는 개편의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
인구소멸 시대, 교육은 생존 전략이 되어야 한다
이번 개편의 또 다른 핵심은 인구감소 대응이다.
경남의 상당수 군 지역은 학령인구 감소와 지방소멸 위기를 동시에 겪고 있다.
이제 교육은 학교 안에서만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 산업을 교육과 연결하고 아이들이 지역에서 성장하며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지방교육의 새로운 역할이다.
경남교육청이 추진하는 지역 특색 프로그램과 지자체 공동 투자 방식은 이러한 점에서 의미 있는 시도다.
다만 행정기관 간 협약만으로는 지역소멸을 막을 수 없다.
청년이 정착할 일자리, 문화, 주거정책과 교육이 함께 움직일 때 비로소 지역교육도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
현장과의 소통 부족은 여전히 과제
교육정책은 학생과 교사, 학부모가 직접 체감하는 정책이다.
하지만 이번 사업 전환 과정에서도 일부 교원단체와 교육 시민단체는 충분한 의견 수렴이 없었다며 절차적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정책의 성공은 행정의 속도가 아니라 현장의 공감에서 시작된다.
새로운 조례를 제정하고 사업을 확대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교사와 학부모, 지자체, 지역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정책 설계다.
과거의 갈등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행정 주도의 일방적인 개편이 아니라 현장의 목소리를 제도 속에 담아내야 한다.
새로운 조례는 제도적 안전장치가 되어야 한다
경남교육청은 기존 조례를 대신해 '인구감소 위기 대응을 위한 지역교육 협력에 관한 조례'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새 조례는 단순히 사업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수준을 넘어 교육청과 지방자치단체의 책임과 역할, 재정 분담 원칙, 정치적 중립성 확보 방안까지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
특히 외부 강사 검증과 교육 콘텐츠 관리, 예산 집행의 투명성을 제도적으로 보완하지 않는다면 같은 논란은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
교육은 정치의 전리품이 아니라 아이들의 미래다
이번 정책 전환은 경남교육이 새로운 출발점에 섰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진정한 개혁은 명칭 변경이 아니라 신뢰 회복에서 시작된다.
과거 마을교육공동체가 남긴 가장 큰 교훈은 교육정책이 정치와 이념의 영향을 받을 때 가장 큰 피해자는 학생이라는 사실이다.
경남교육청은 더 이상 과거의 갈등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학교는 교육의 본질에 집중하고, 지역사회는 교육을 뒷받침하는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도의회 역시 정쟁을 넘어 지역교육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협력에 나설 필요가 있다.
교육은 어느 한 기관의 소유물이 아니다.
교육청과 지방자치단체, 학교와 지역사회, 학부모와 교사가 함께 만들어 가는 공공의 자산이다.
'경남형 지역사회학교 프로젝트'가 성공하려면 정치적 구호보다 학생 중심의 교육 철학, 행정 편의보다 현장 중심의 소통, 이념보다 지역의 미래를 우선하는 원칙이 흔들림 없이 지켜져야 한다.
교육은 정권이나 교육감이 바뀔 때마다 이름이 바뀌는 사업이 아니라, 아이들의 미래를 책임지는 백년대계라는 사실을 경남교육은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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