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강을 세우려다 기강이 무너졌다'…국민의힘 윤리위가 보여준 민낯
정당에서 윤리위원회는 당헌·당규를 지키고 공정한 질서를 세우는 최후의 보루다.
그러나 최근 국민의힘 윤리위원회는 징계의 칼을 들기도 전에 내부 갈등으로 사실상 기능이 마비되는 초유의 상황을 맞았다.
회의는 의결 정족수를 채우지 못했고, 윤리위원장은 독단적 발표 논란에 휩싸였으며, 일부 위원들은 실명을 공개한 채 공개 반박에 나섰다. 급기야 위원 사퇴까지 이어지면서 윤리위는 '징계기구'가 아니라 '분쟁의 당사자'가 되어버렸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의 기강을 바로잡겠다던 조직이 가장 먼저 자신의 기강을 잃은 셈이다.
징계가 혁신을 대신할 수는 없다
6·3 지방선거 패배 이후 국민의힘 지도부는 당내 분열의 책임을 묻겠다며 강도 높은 윤리 징계를 예고했다.
당 대표와 당을 향한 반복적이고 조직적인 비판을 징계 대상으로 삼겠다는 기준도 제시됐다.
그러나 문제는 징계 기준의 객관성과 절차적 정당성이다.
징계는 개인의 정치적 생명과 당내 활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결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절차적 공정성과 구성원의 신뢰다.
하지만 이번 윤리위는 정족수 논란 속에서 기준이 발표됐다는 내부 반발이 제기됐고, 윤리위원들마저 공개적으로 이의를 제기하면서 징계의 정당성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징계가 공정성을 잃는 순간 그것은 윤리가 아니라 정치가 된다.
'비판은 징계 대상'이라는 발상은 위험하다
정당은 다양한 의견이 경쟁하는 정치 공동체다.
건전한 비판과 내부 토론은 정당을 건강하게 만드는 필수 요소이지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물론 특정인을 향한 허위 사실 유포나 악의적인 명예훼손은 제재받아야 한다.
그러나 당 운영과 지도부를 비판하는 정치적 의견까지 반복성과 조직성을 이유로 징계 대상으로 확대한다면 표현의 자유와 당내 민주주의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피하기 어렵다.
정당의 경쟁력은 침묵에서 나오지 않는다.
쓴소리를 들을 수 있는 조직이 위기에 강하다.
윤리위의 '내전'은 곧 리더십의 위기다
윤리위원회 내부에서 벌어진 갈등은 단순한 개인 간 충돌이 아니다.
이는 지도부의 리더십과 당 운영 방식에 대한 불신이 표면화된 결과로 볼 수 있다.
특히 윤리위원들이 신분을 공개하며 공개 반박에 나선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통상 윤리위원회는 독립성과 비공개 원칙을 바탕으로 운영된다.
그런 조직 내부에서 공개 충돌이 벌어졌다는 것은 내부 조정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만약 지도부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반발한 위원을 교체하는 방식을 선택한다면, 당내에서는 '윤리위 장악' 또는 '입맛에 맞는 윤리위 구성'이라는 또 다른 논란을 불러올 가능성도 있다.
리더십은 인사를 통해 힘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신뢰를 통해 권위를 얻는 것이다.
지금 국민의힘에 필요한 것은 징계보다 혁신이다
국민의힘은 지방선거 패배 이후 여전히 뚜렷한 반전의 계기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당내 에너지가 정책 경쟁보다 계파 갈등과 징계 논란에 소모되는 동안 국민이 체감하는 민생과 경제 문제는 뒤로 밀려나고 있다.
장동혁 대표가 취임 1주년을 맞아 쇄신안을 준비하고 있다면, 그 출발점은 징계가 아니라 혁신이어야 한다.
당이 국민에게 보여줘야 할 것은 누가 더 많은 당원을 징계했느냐가 아니라, 어떤 미래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느냐다.
정당은 내부를 단속하는 조직이 아니라 국민의 선택을 받기 위해 경쟁하는 조직이다.
순자가 말한 '화취조(火就燥), 수취습(水就溼)'의 교훈
중국 전국시대 사상가 순자(荀子)는 이렇게 말했다.
"불은 마른 곳부터 붙고, 물은 낮고 습한 곳으로 흐른다."
(火就燥也, 水就溼也)
이 말은 세상의 결과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는 뜻이다.
또한,
"사악하고 그릇된 것이 자신 안에 있으면 원망이 따르게 된다."
(邪穢在身, 怨之所構)
라는 구절 역시 남을 탓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오늘날 국민의힘이 직면한 윤리위 혼란에도 이 교훈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내 갈등이 계속된다면 그 원인을 특정 계파나 일부 의원에게만 돌릴 것이 아니라, 지도부의 운영 방식과 의사결정 구조에도 문제가 없었는지 함께 성찰해야 한다.
갈등은 우연히 생기지 않는다.
원인이 있기 때문에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정당을 살리는 것은 징계가 아니라 신뢰다
국민의힘 윤리위원회가 보여준 혼란은 단순한 내부 갈등이 아니다.
이는 정당 민주주의와 지도부 리더십이 동시에 시험대에 올랐음을 의미한다.
윤리위원회는 특정 세력을 겨냥하는 정치적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공정성과 독립성이 무너지면 윤리위의 존재 이유도 함께 사라진다.
장동혁 대표 역시 당을 쇄신하고 기강을 세우겠다는 의지는 존중받을 수 있다.
그러나 기강은 처벌만으로 세워지지 않는다.
구성원이 절차를 신뢰하고, 지도부를 존중하며, 공동의 목표를 공유할 때 비로소 조직은 하나로 움직인다.
지금 국민의힘이 국민에게 보여줘야 할 것은 '누가 징계를 받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신뢰를 회복하고 민생을 책임질 정당으로 거듭날 것이냐'에 대한 답이다.
정당은 서로를 침묵시키는 조직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의견을 제도 안에서 조율하며 국민의 선택을 받는 민주주의의 공간이다.
순자의 가르침처럼 결과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
오늘의 혼란을 남 탓으로 돌린다면 내일의 혼란도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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