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는 이미 사과 지도를 바꾸고 있다. 그런데 정책은 아직도 '붉은 사과'에 머물러 있다.
경상남도농업기술원이 최근 지구 온난화로 과수 재배 환경이 급변함에 따라 기후변화와 소비자 수요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고온에서도 붉게 착색되는 여름 사과 품종 개발’ 계획을 발표하며 기후변화 시대 농업의 도전과제에 대응하기 위한 연구 의지를 표명했다. 분명 신품종 개발은 필수적이고 의미 있는 시도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이번 발표가 강조한 ‘붉은 사과’ 착색 문제는 기후위기 농업의 근본 문제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사과는 더 이상 경남을 좋아하지 않는다
기후변화는 이미 경남의 사과 재배 환경을 근본적으로 뒤바꾸고 있으며, 이는 단어 그대로 ‘사과가 경남을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 심각한 상황이다. 사과는 일정한 저온과 큰 일교차가 필요한 온대 과수임에도 불구하고 무더위와 폭염, 열대야의 반복으로 착색 불량, 당도 저하, 과일 크기 부진, 병해충 피해 등 다중 복합 문제를 겪고 있다. 이에 따라 재배 적지는 한반도 내에서 점차 북상하며 고랭지와 고위도 지역에 한정되고 있다. 이 현실은 전문가 예측이나 추상적 평가가 아닌 현장의 농민들이 이미 체감하는 급격한 환경 변화다.
품종 개발은 필요하지만 '근본 처방'은 아니다
품종 개발은 분명 중요한 ‘적응 전략’이나, 고온 적응 신품종 하나로 기후변화 문제 전체를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명확하다. 과거와 달리 토양, 기온, 강수 패턴, 병해충 발생 양상까지 대폭 변화한 농업 환경을 단순히 ‘착색 기술’로 대응하는 것은 구조적 위기의 본질을 외면하는 셈이다.
'적응'보다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제 경남 농업은 ‘버티기’ 중심의 적응 단계를 넘어서 ‘전환’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단순히 품종만 바꾸는 것을 넘어서며, 다음과 같은 근본적 질문에 답하는 종합적 정책과 전략이 절실하다.
-. 경남에서 사과 재배가 가능한 북방 한계와 그 경제성은 어디까지인지
-. 사과를 대체할 수 있는 고부가가치 품목은 무엇인지
-. 농가의 품목 전환 비용과 재배 환경 변화에 대한 실질적 지원 방안은 무엇인지
-. 스마트 과수원을 포함한 첨단 농업 기술의 확대 방안은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
연구보다 정책이 늦고, 정책보다 현실이 더 빠르다
더불어 현장 농민들은 매년 생산비 상승, 냉해 및 폭염 반복, 노동력 부족과 병해충 증가, 수확량 감소라는 이중고에 직면해 있다. 이들의 현실적 어려움과 불안을 충실히 반영한 정책 지원이 매우 부족한 상황이며, 기술 개발 속도가 기후변화 속도에 미치지 못하는 우려가 크다.
홍보보다 냉정한 현실 진단이 먼저다
보도자료가 주로 연구 성과만을 부각한 반면, 재배 가능 면적 감소, 농가 소득 하락 등 구조적·장기적 문제점에 대한 명확한 진단과 이를 해결할 정책적 로드맵 제시는 미흡하다. 단순히 ‘붉은 사과를 만들겠다’는 희망 메시지가 아니라, 앞으로도 안정적으로 농업에 종사할 수 있는 확실한 미래 비전과 구체적인 실행 전략이 농민과 지역사회가 바라는 핵심 요구다.
이제는 '사과를 지킬 것인가'보다 '농업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기후변화는 단순한 품종 문제가 아닌 농업 시스템 전반의 대전환을 요구하는 역사적 도전이다. 경남 농업이 겪는 ‘변화의 문턱’은 단기적 해결책으로 극복할 수 없으며, 연구개발에 머무르지 않고 재배지 재편, 스마트농업 확대, 농가 소득 보전, 기후보험 강화, 장기적 농업 정책과 사회경제적 지원이 통합 추진되어야 한다.
결국 경남 사과 산업은 ‘품종’이 아닌 ‘생존 전략’을 재정립해야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 기후변화 속에서 농업이 지속 가능하려면, 화려한 기술이나 흥미로운 신품종보다 ‘냉철한 현실 인식’과 ‘근본적 체제 전환’이 실질적 대안이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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