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 의료는 복지가 아니라 생존이다
경상남도 남해군과 함양군이 올해 처음 시행되는 보건복지부의 의료취약지 소아 야간·휴일 진료기관 육성사업에 잇따라 선정되면서 지역 의료환경 개선에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남해군은 취약지 소아 야간·휴일 진료기관과 의료취약지 인공신장실 지원사업에 모두 선정됐고, 함양군 역시 소아 야간·휴일 진료기관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동안 지역 주민들이 감내해야 했던 '원정 진료'와 '원정 투석'의 불편을 덜 수 있는 의미 있는 첫걸음이라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성과다.
그러나 이번 보건복지부 공모 선정이 곧 의료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의료취약지의 현실은 단순히 시설 하나를 늘리거나 예산을 지원한다고 해결될 만큼 가볍지 않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일회성 사업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지역 의료체계다.
가장 시급한 변화는 소아 야간·휴일 진료체계다. 지금까지 남해와 함양에서는 아이가 밤이나 휴일에 갑자기 아프면 보호자들은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인근 도시 병원으로 이동해야 했다. 응급은 아니지만 즉각적인 진료가 필요한 경증 환자조차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현실은 부모들에게 큰 부담이었고, 아이들에게는 치료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는 위험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업은 이러한 공백을 일정 부분 메울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소아 인구가 적은 지역의 현실을 반영해 기존 달빛어린이병원 기준인 주 40시간이 아닌 주 15시간 이상 운영만으로도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기준을 완화한 것은 현실적인 접근이다. 획일적인 기준보다 지역 여건을 고려한 정책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이는 어디까지나 '과도기적 대책'이다. 주 15시간 운영만으로는 야간과 휴일 의료 공백을 충분히 해소하기 어렵다. 주민들이 원하는 것은 제한된 시간의 진료가 아니라 언제든 안심하고 찾을 수 있는 상시 소아진료 체계다. 결국 이번 사업은 달빛어린이병원으로 가기 위한 출발점일 뿐, 최종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인공신장실 지원 역시 마찬가지다. 혈액투석 환자는 일주일에 두세 차례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아야 하는 대표적인 만성질환 환자다. 지역에 투석시설이 없으면 매주 장거리 이동을 반복해야 하고, 이는 환자의 체력은 물론 가족의 시간과 경제적 부담까지 가중시킨다.
남해병원이 이번 사업을 통해 최신 혈액투석 장비를 도입하고 전문 의료진을 기반으로 안정적인 진료체계를 갖추게 된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의료 접근성 향상은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환자의 생명과 삶의 질을 지키는 기본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다른 과제는 지속 가능성이다. 사업비는 국비 50%, 도비 25%, 군비 25%의 매칭 방식으로 지원된다. 초기에는 정부 지원이 뒷받침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지방정부의 재정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재정 기반이 넉넉하지 않은 군 단위 지자체에서는 안정적인 운영비 확보가 가장 큰 숙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더욱 우려되는 부분은 의료인력 문제다. 최신 장비를 갖추는 것보다 어려운 것이 전문의를 확보하고 장기간 근무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지방 의료의 위기는 시설 부족보다 인력 부족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특정 병원에 의료서비스가 집중될 경우 의료진 이탈이나 병원 경영 악화가 곧바로 지역 의료 공백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경상남도는 공모사업 선정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인근 시·군 거점병원과 연계한 순환진료 시스템을 구축하고, 공공의료 인력 확충과 전문의 정착 인센티브를 확대하며, 원격협진과 응급이송 체계를 함께 강화해야 한다. 그래야 군 단위 의료서비스가 특정 병원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지역의 의료격차는 단순한 생활 불편이 아니다. 의료 접근성이 낮다는 것은 곧 생존권의 격차이며, 지역소멸을 앞당기는 핵심 요인 중 하나다. 젊은 부모가 아이를 키우기 위해 도시를 선택하고, 만성질환자가 치료를 위해 고향을 떠나는 현실에서는 어떤 인구정책도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이번 남해·함양의 공모사업 선정은 의료취약지 개선을 위한 의미 있는 출발이다. 그러나 진정한 성공은 공모 선정이라는 결과가 아니라 주민들이 '멀리 가지 않아도 치료받을 수 있다'는 신뢰를 갖게 되는 순간 완성된다. 의료는 보여주기식 사업이 아니라 주민의 생명과 직결된 공공 인프라다. 이제 필요한 것은 사업 하나를 따내는 행정이 아니라, 지역 어디에서나 안심하고 치료받을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의료 생태계를 만드는 행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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