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 산하기관장 인선, ‘사람을 채우는 일’이 아니라 ‘도정의 방향을 세우는 일’이다
민선 9기 박완수 경남도정의 첫 산하기관장 인선이 본격화됐다. 경남로봇랜드재단과 경남신용보증재단 공모를 시작으로, 공석이거나 임기가 만료된 11개 출자·출연기관의 수장이 새로 결정된다.
이번 인선은 단순한 기관장 교체가 아니다. 박완수 도지사가 앞으로 어떤 철학과 기준으로 도정을 운영할 것인지, 민선 9기 경남도정이 전문성과 성과 중심으로 나아갈지 아니면 정치적 이해관계에 흔들릴지를 가늠하는 첫 시험대다.
특히 경남테크노파크, 경남투자경제진흥원, 경남신용보증재단, 경남로봇랜드재단은 경남의 미래 산업과 지역경제를 직접 움직이는 핵심 기관으로
정치적 공로보다 전문성과 경영 능력이 우선돼야 한다. 즉, 피지컬 AI와 첨단 제조업, 기업 투자 유치,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금융 지원 등 도정의 주요 과제를 실제 현장에서 집행하기 때문이다.
이들 기관의 수장은 단순한 행정 관리자가 아니다. 산업의 흐름을 읽고, 기업과 투자자를 설득하며, 조직을 이끌고, 정책을 성과로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기관장의 전문성과 리더십에 따라 수천억 원 규모의 사업과 지역 산업의 경쟁력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런 만큼 이번 인선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지난 6.3 지방선거의 선거 지원을 위해 사임한 인사나 정치권 인사가 다시 기용될 경우
보은 인사·자리 돌려막기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선거운동을 위해 임기 중 사임한 기관장이나 선거 캠프·정치권 출신 인사가 다시 산하기관장으로 돌아온다면, 인선의 결과가 아무리 절차를 갖췄더라도 도민의 눈에는 ‘논공행상’으로 비칠 수 있다. 공모 절차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공정성이 자동으로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공개모집이 이미 정해진 인사를 정당화하는 형식적 절차로 전락한다면, 인사 제도는 신뢰를 얻기보다 불신을 키운다. 전문성과 기관 운영 능력보다 정치적 공로와 인맥이 앞선다는 인식이 퍼지면, 조직 내부의 승진 기회는 줄어들고 구성원들은 성과보다 ‘누구와 가까운가’를 먼저 살피게 된다.
그 결과는 조직 사기 저하와 줄서기 문화, 정책 집행력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여씨춘추》는 이렇게 말한다.
義者 萬事之紀也(의자 만사지기야)
“의(義)는 모든 일을 처리하는 기본 원칙이다.”
인사에서의 ‘의’는 특정인을 배제하거나 특정인을 우대하는 정치적 계산이 아니다. 능력 있는 사람에게 기회를 주고, 공정한 절차를 지키며, 공적 권한을 도민을 위해 사용하는 원칙이다.
또한 《여씨춘추》는 통치의 성패가 다른 곳이 아니라 스스로를 돌아보는 데 달려 있다고 강조한다.
過勝之 勿求於他, 必反於己
“성패의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지 말고, 반드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인사가 잘못됐을 때 책임을 추천위원회나 인사청문회, 제도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산하기관장 임명권을 가진 도지사가 최종 책임을 져야 한다.
도의회 인사청문회는 후보자의 전문성과 도덕성, 이해충돌 여부를 검증하는 중요한 절차다. 하지만 청문 결과에 법적 구속력이 없는 만큼, 최종 임명권자인 도지사의 판단과 책임은 더욱 무겁다.
따라서 박완수 지사는 인선 과정에서 최소한 세 가지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한다.
첫째, 정치적 공로보다 전문성을 우선해야 한다. 기관의 업무와 후보자의 경력, 정책 이해도, 조직 운영 능력이 실질적으로 연결되는지 검증해야 한다.
둘째, 공모 절차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지원자의 자격과 심사 기준, 후보자의 주요 경력과 비전, 이해충돌 가능성을 도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설명해야 한다.
셋째, 임명 이후의 성과 책임까지 분명히 해야 한다. 기관장에게 권한만 부여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경영 목표와 성과 지표를 설정하고 정기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인사는 한 번의 결정으로 끝나지 않는다. 잘못된 인사는 기관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조직의 신뢰를 무너뜨리며, 결국 그 비용은 도민에게 돌아온다. 반대로 전문성과 책임감을 갖춘 인사는 정책의 실행력을 높이고, 민선 9기 도정의 성과를 뒷받침하는 가장 강력한 기반이 될 수 있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은 낡은 격언이 아니다. 특히 경남의 미래 산업과 지역경제를 책임질 산하기관장 인선에서는 더욱 그렇다.
민선 9기 경남도정의 첫 인사는 박완수 도정의 철학을 보여주는 거울이 될 것이다. 이번 인선이 정치적 보상의 통로가 될지, 전문성과 공정성을 바탕으로 경남의 미래를 설계하는 출발점이 될지는 오롯이 도정의 선택에 달려 있다.
《여씨춘추》가 말한 ‘의(義)’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인사권자가 마땅히 지켜야 할 바른 원칙이며, 도민의 신뢰를 얻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경남도는 이번 인선에서 ‘누구를 위한 자리인가’가 아니라 ‘누가 가장 잘할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그리고 인사의 성패를 다른 곳에서 찾기보다, 스스로 정한 원칙을 지켰는지 먼저 돌아봐야 한다.
민선 9기의 첫 인사는 경남도정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기회다. 그 출발은 보은이 아니라 능력으로, 밀실이 아니라 투명성으로, 정치적 계산이 아니라 도민을 향한 책임으로 시작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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