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오션플랜트 매각, 기업은 떠날 자유만 있고 지역에 대한 책임은 없는가
SK오션플랜트 매각을 둘러싼 경남 고성군의 반발은 단순한 지역 이기주의가 아니다. 지역의 행정 지원과 공공 인프라, 주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성장한 기업이 경영권을 넘기는 과정에서 투자와 고용, 지역 상생에 대한 책임까지 내려놓으려 한다면 당연히 제기될 수밖에 없는 정당한 문제 제기다.
SK에코플랜트는 SK오션플랜트 보유 지분 36.98%의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기업은 사업 재편과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자산을 매각할 수 있다. 시장경제에서 기업의 경영 판단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기업의 자유가 무제한일 수는 없다.
기업은 이익이 날 때만 지역과 상생하고, 경영 전략이 바뀌면 지역과의 약속을 정리해도 되는 존재가 아니다. 지역의 지원을 받을 때는 ‘동반 성장’을 말하고, 매각을 추진할 때는 ‘기업의 자율적 판단’만 내세운다면 그동안 강조해 온 사회적 책임은 결국 필요할 때만 꺼내 쓰는 홍보 문구에 불과해진다.
고성군은 SK오션플랜트의 성장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산업단지 기반시설 확충, 진입도로 개설, 송전선로 설치 등 각종 행정 지원을 이어왔다. 지역사회도 기업의 투자 확대와 일자리 창출을 기대하며 기업의 성장을 뒷받침했다.
기업이 성장할 때는 지역의 도움을 받았지만, 기업이 떠날 때는 지역이 모든 위험을 감당해야 한다면 이것은 상생이 아니다. 기업의 이익은 기업이 가져가고, 매각의 불확실성과 고용 불안은 지역에 떠넘기는 구조일 뿐이다.
지금 고성군민이 묻는 것은 복잡하지 않다.
“1조 원 투자계획은 그대로 이행되는가.”
“노동자의 일자리는 확실하게 지켜지는가.”
“지역 협력업체와 상권은 누가 보호하는가.”
“매각 이후 투자 축소나 구조조정이 발생하면 누가 책임지는가.”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해 기업이 지역사회가 납득할 만한 구체적인 답을 내놓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특히 인수 주체가 사모펀드 운용사라는 점에서 지역사회의 불안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사모펀드라는 이유만으로 인수를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투자금 회수와 수익 실현을 중시하는 구조 속에서 장기 투자와 고용 유지, 지역 상생이 얼마나 확실하게 보장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따라서 인수 주체의 자금 조달 능력과 장기 경영계획, 산업 전문성, 투자 이행 능력을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 매각 계약서에 고용 승계와 투자 이행, 지역 상생 방안이 구속력 있게 담기는지도 공개해야 한다.
말뿐인 약속은 지역의 불안을 해소할 수 없다.
“고용을 최대한 유지하겠다.”
“지역경제에 기여하겠다.”
“장기적으로 기업을 성장시키겠다.”
이런 원론적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 투자 규모와 시기, 고용 유지 기간, 협력업체 보호 방안, 지역사회 기여 계획을 수치와 일정으로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경영이 어려울 때 사라지는 선택 사항이 아니다. 오히려 기업의 주인이 바뀌고 노동자와 지역사회가 불안해지는 순간에 더 강하게 요구되는 책임이다.
고성의 지원으로 성장해 놓고 매각 뒤 투자·고용을 외면한다면 ‘경영 판단’이 아니라 책임 회피다
SK에코플랜트는 매각을 추진하기에 앞서 고성군과 지역사회에 먼저 설명해야 한다.
왜 매각이 필요한가.
매각 이후 SK오션플랜트의 투자와 고용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당초 제시한 1조 원 규모의 투자계획은 유지되는가.
인수 이후 구조조정이나 자산 매각 가능성은 없는가.
지역과 맺은 약속은 누가, 어떤 방식으로 책임지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매각 절차만 진행한다면 지역사회는 이를 정상적인 경영 판단이 아니라 책임 없는 ‘출구전략’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고성군도 매각 반대만 외칠 것이 아니라 기업과 인수 주체를 상대로 구체적이고 강제력 있는 안전장치를 요구해야 한다.
첫째, 1조 원 투자계획의 유지 여부와 세부 이행 일정을 공개해야 한다.
둘째, 기존 노동자의 고용 승계와 고용 안정 방안을 매각 조건에 명시해야 한다.
셋째, 지역 협력업체 보호와 지역경제 기여 방안을 상생협약으로 제도화해야 한다.
넷째, 인수 주체의 자금 조달 능력과 장기 투자 역량을 객관적으로 검증해야 한다.
다섯째, 투자 약속이나 고용 유지 조건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실질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기업은 주인을 바꿀 수 있다. 그러나 기업이 지역과 맺은 책임까지 바꿀 수는 없다.
경영권은 거래할 수 있다. 하지만 지역의 공공 지원과 주민의 신뢰, 노동자의 삶까지 거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SK오션플랜트 매각은 단순한 기업 거래가 아니다. 고성의 일자리와 협력업체, 지역경제의 미래가 걸린 문제다.
기업이 진정으로 사회적 책임을 말한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매각 성사를 위한 협상 속도가 아니다.
투자 약속을 지키겠다는 확약, 노동자의 고용을 보호하겠다는 보장, 지역과 함께하겠다는 구속력 있는 책임이다.
그 책임을 외면한 매각은 기업의 자유가 아니라 기업의 책임 회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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