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권은 없앴지만, 국민의 피해 구제 장치는 준비됐는가
검찰의 직접수사권과 보완수사권을 폐지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3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겠다는 명분 아래 70여 년간 유지된 형사사법 체계를 대수술한 것이다.
검찰 권한의 비대화와 선택적 수사, 정치적 중립성 훼손에 대한 문제 제기는 분명 필요했다. 권력기관은 누구도 견제 밖에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검찰개혁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모든 입법 절차의 졸속 추진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이번 개정이 ‘무엇을 어떻게 고칠 것인가’보다 ‘무엇을 먼저 없앨 것인가’에 치우쳤다는 점이다.
검찰의 수사권을 폐지했다면 그동안 검찰이 수행해 온 보완·검증 기능을 누가 맡을지, 경찰 수사의 오류와 누락을 어떤 방식으로 바로잡을지, 피해자가 부실 수사로 고통받을 때 어디에 호소할지부터 명확히 설계했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 법안은 기존 권한을 없애는 데는 속도를 냈지만, 그 빈자리를 채울 실질적인 대책은 충분히 마련하지 못했다.
권한 폐지는 단숨에 이뤄졌지만 책임의 주체는 흐려졌다.
개정안은 검사의 보완수사를 없애는 대신 사건 관계인의 의견을 듣고 자료를 제출받을 수 있는 ‘사실관계 확인’ 절차를 신설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확보한 진술과 자료는 재판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
검사가 사건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관계인을 직접 조사해도, 그 결과를 증거로 활용하지 못한다면 다시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해야 한다. 결국 한 사건이 경찰과 공소청을 오가고, 피해자와 참고인은 같은 진술을 반복해야 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것이 수사·기소 분리인가. 아니면 기관 간 책임 떠넘기기를 제도화한 것인가.
수사기관의 권한을 분리하면서 사건 처리의 책임까지 쪼개버린다면, 그 피해는 정치권이나 수사기관이 아니라 사건 당사자와 국민에게 돌아간다.
특히 범죄 피해자 보호 대책은 허술하다. 일부 강력·취약계층 대상 범죄에 대해서만 전건송치를 도입하면서 보이스피싱, 전세사기, 대규모 금융사기 등 국민 생활과 직결된 민생 범죄는 충분한 보호 장치에서 제외됐다.
피해자의 권리가 피해 규모나 구제 필요성이 아니라 수사기관이 적용한 죄명에 따라 달라진다면 형사사법의 공정성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범죄 피해자는 법률 조항의 빈틈을 연구할 여유가 없다. 신속한 수사와 정확한 증거 확보, 책임 있는 사건 처리를 원할 뿐이다.
그런데 국회는 검찰 권한을 줄이는 데는 과감했지만, 피해자의 권리를 보완하는 데는 충분히 치밀하지 못했다.
특별사법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 폐지도 우려스럽다. 노동·환경·식품·관세·조세 등 전문 분야의 범죄를 다루는 특별사법경찰은 행정 분야의 전문성은 갖췄지만, 형사 절차와 증거법에 대한 수사 경험은 기관과 인력에 따라 차이가 있다.
기존 지휘 체계를 없앴다면 수사 오류와 사건 누락을 막을 독립적인 법률 검토와 교차 검증 장치를 먼저 마련했어야 한다. 하지만 충분한 대안 없이 기존 통제 장치부터 없앤다면 전문성 강화가 아니라 수사 공백을 키울 수 있다.
검사의 영장청구 구조를 바꾼 조항도 헌법적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헌법이 규정한 검사의 영장청구권을 어디까지 해석할 것인지에 대한 법률적 논쟁이 남아 있는데도, 충분한 헌법 검토와 사회적 합의 없이 제도를 강행했다면 결국 위헌 논란과 법적 혼란을 국민에게 떠넘기는 셈이다.
법원이 ‘중대한 위법 수사’나 ‘소추재량권의 현저한 일탈’을 이유로 공소를 기각할 수 있도록 한 조항 역시 기준이 모호하다.
무엇이 ‘중대한 위법’인지, 어떤 경우가 ‘현저한 일탈’인지 구체적인 판단 기준이 없다면 법원마다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같은 사건이라도 재판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상황이 반복된다면 형사사법의 예측 가능성과 법적 안정성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일반 형사사건에서는 검사의 수사권을 없애면서 특별검사에게는 검사 수사 권한을 인정하는 구조는 개혁의 원칙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모순이다.
평소에는 검사의 수사가 문제라며 권한을 폐지하면서, 특정 사건에서는 검사의 수사가 필요하다고 예외를 둔다면 국민은 묻게 된다.
검사의 수사권은 원칙적으로 위험한 권한인가, 아니면 정치적으로 필요한 사건에서는 허용되는 권한인가.
제도의 원칙은 정치적 필요에 따라 달라져서는 안 된다.
형사사법 개혁은 특정 정권이나 특정 정치인의 재판을 둘러싼 논란과 연결돼서도 안 된다. 야권이 이번 개정안을 두고 특정 정치인의 재판과 관련한 ‘정치적 입법’이라고 비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입법의 진정성을 입증하는 방법은 정치적 구호가 아니다. 충분한 검증과 투명한 논의,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제도 설계다.
그러나 이번 개정 과정은 속도에 비해 검증이 부족했고, 권한 폐지에 비해 대안은 불완전했다.
검찰개혁은 검찰을 무력화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검찰의 권한을 통제하면서도 수사의 전문성과 책임성을 높이고, 범죄 피해자를 더 신속하게 보호하는 것이 개혁의 본질이어야 한다.
권한을 없애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사라진 권한이 담당하던 검증 기능을 더 나은 제도로 대체하는 것은 훨씬 어렵다.
국회는 가장 어려운 과제를 뒤로 미룬 채 가장 쉬운 선택부터 한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검찰 수사권 폐지’라는 정치적 성과를 서둘러 선언하기 전에, 경찰 수사의 책임성과 전문성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 부실 수사와 사건 누락을 누가 검증할 것인지, 피해자의 이의 제기와 구제 절차를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부터 답했어야 한다.
개혁은 속도가 아니라 완성도로 평가받는다.
준비되지 않은 권한 폐지는 개혁이 아니라 제도 실험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실험의 실패 비용은 법안을 통과시킨 정치권이 아니라 범죄 피해자와 국민이 떠안게 된다.
검찰의 권한을 줄이는 데 성공했더라도 국민의 권리 보호가 약해진다면, 그것은 성공한 개혁이 아니다.
검찰개혁의 이름으로 수사 체계의 빈틈을 만들고, 그 빈틈을 국민에게 감당하라고 해서는 안 된다.
권한은 없앴지만 책임은 남지 않았고, 제도는 바꿨지만 국민을 지킬 준비는 부족하다.
그것이 지금의 형사사법 즉, 국가가 범죄를 예방하고, 수사하며, 재판을 통해 처벌을 확정하고 형을 집행하는 법적 절차와 국가 기관의 체계를 의미하는 대한민국 형사사법 개혁이 안고 있는 가장 큰 위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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