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지역 중학교 배정을 둘러싼 갈등이 결국 원점으로 돌아갔다.
창원교육지원청은 삼정자중학교 추첨 우선배정 대상 초등학교를 기존 9곳에서 7곳으로 줄이려던 개정안을 철회하고 현행 체계를 유지하기로 했다. 행정예고 이후 7,227건의 의견이 쏟아지자 조정안을 접은 것이다. 교육이 무슨 장난도 아니고.
그러나 이번 철회를 단순히 “학부모 의견을 수렴한 결과”로 포장해서는 안 된다.
애초 충분한 분석과 객관적인 기준 없이 개정안을 내놓았다가 거센 반발에 부딪히자 다시 물러선 것은 교육행정의 준비 부족과 정책 판단의 한계를 드러낸 사례다. 교육이 무슨 장난도 아니고, 결정했다가 반대가 많으면 철회하면 그만인 일이란 말인가.
교육 정책은 행정기관의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실험 대상이 아니다.
중학교 배정은 학생의 통학 환경과 생활 안전, 학습 여건은 물론 친구 관계와 정서적 안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한 번의 배정 결정이 학생과 가정의 일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며, 경우에 따라서는 한 세대의 교육 경험과 성장 과정에도 장기적인 흔적을 남긴다.
그런데도 창원교육지원청은 특정 학교의 과밀과 선호 쏠림, 근거리 통학권 침해라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추첨 우선배정 대상 학교를 줄이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학교별로 우선배정권이 2곳에서 9곳까지 제각각인 상황에서 일부 대상 학교만 조정하면 새로운 형평성 논란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결과는 뻔했다.
삼정자초 학생들은 집 가까운 학교를 두고 원거리 학교로 배정될 수 있다는 불안에 놓였고, 축소 대상이 된 남정초와 성주초 학부모들은 기존에 기대했던 진학 기회와 행정의 신뢰가 훼손됐다고 반발했다.
누군가의 통학권을 보장하기 위해 다른 누군가의 선택권을 줄이는 방식은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갈등의 대상을 바꾸는 것에 불과하다.
더 큰 문제는 창원교육지원청이 갈등을 조정할 객관적인 기준과 설득 가능한 근거를 충분히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통학 거리와 실제 도보 시간, 도로와 보행 안전, 학교별 수용 가능 인원, 학급 규모, 학생 수 변화 등은 수치로 분석할 수 있는 요소다. 그럼에도 명확한 정량 기준 없이 행정구역이나 기존 관행에 의존한 채 배정 대상을 조정하려 했으니 학부모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울산과 충북 청주 등 일부 지역은 GIS 기반의 근거리 배정 모델을 활용해 통학 거리와 도로망, 학교 수용 여건 등을 정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지역별 여건은 다르지만, 적어도 ‘누가 더 큰 목소리를 냈는가’가 아니라 객관적인 데이터와 원칙을 바탕으로 갈등을 줄이려는 노력은 참고할 가치가 있다.
창원교육지원청은 이번 사태를 단순한 민원 폭주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7,227건의 의견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그 안에는 자녀의 통학 안전을 걱정하는 학부모의 불안과, 교육행정의 기준을 믿기 어려워진 지역사회의 불신이 담겨 있다.
행정은 민원이 많다고 무조건 물러서서도 안 되고, 반대로 민원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정책을 밀어붙여서도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충분한 데이터와 객관적인 기준, 그리고 누구에게나 설명할 수 있는 원칙이다.
이번 철회가 또 다른 ‘현상 유지’로 끝나서는 안 된다.
창원교육지원청이 2028학년도 적용을 목표로 중학교 배정 기준 전면 개편을 추진한다면, 이번에는 반드시 근본적인 대수술이 이뤄져야 한다.
우선 통학 거리와 실제 이동 시간, 보행 안전, 도로망, 학교별 수용 능력, 학생 수 변화, 학급 규모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한 정량적 배정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GIS 기반 통학권 분석 등 검증된 시스템을 도입해 배정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학부모가 결과를 이해하고 예측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정 학교로 학생이 몰리는 현상도 배정 방식만 바꿔 해결할 수 없다.
선호 학교의 과밀을 해소하기 위한 학급 증설과 시설 확충을 검토하고, 비선호 학교에는 교육과정과 시설, 교원 배치, 특색 프로그램을 개선하는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학생들이 특정 학교에 몰리는 이유를 해결하지 않은 채 배정 대상만 줄인다면 갈등은 다른 학교와 다른 학부모에게 옮겨갈 뿐이다.
교육 당국은 “전체의 균형”이라는 추상적인 명분 뒤에 숨어서도 안 된다.
교육의 균형은 일부 학생에게 불편을 강요해 만드는 것이 아니다. 학생의 안전과 근거리 통학권을 우선하면서도 학교 간 교육 여건의 격차를 줄이는 방향으로 만들어야 한다.
창원교육지원청은 이번 사태에 대해 왜 충분한 기준과 검토 없이 개정안을 추진했는지, 왜 갈등을 예상하고도 사전 조정을 제대로 하지 못했는지 시민에게 분명히 설명해야 한다.
교육은 정책 실험이 아니다.
결정했다가 반발이 커지면 철회하고, 갈등이 잠잠해지면 다시 검토하는 식의 행정은 학생과 학부모를 불확실성 속에 방치할 뿐이다. 교육정책은 한 번의 결정이 학생의 학교생활과 성장 과정에 오랫동안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더욱 신중하고 책임 있게 추진돼야 한다.
이번 철회는 끝이 아니라 교육행정의 신뢰를 다시 세울 마지막 기회다.
창원교육지원청은 더 이상 땜질식 조정안을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2028학년도 중학교 배정 기준 개편은 객관적인 데이터와 근거리 통학권, 학생 안전이라는 확고한 원칙 위에서 추진해야 한다.
학부모의 목소리에 흔들리는 행정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납득할 수 있는 기준으로 신뢰를 얻는 행정이 필요하다.
교육은 장난이 아니다. 그리고 학생의 미래는 행정의 시행착오를 감당하기 위한 실험장이 되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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