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 앞에서 늑장 대응은 또 다른 재난이다
가뭄은 갑자기 찾아오는 재난이 아니다. 예고된 위기이며, 준비 여부에 따라 피해 규모가 달라지는 관리 가능한 재난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매년 반복되는 가뭄 앞에서 같은 대책을 되풀이하고 있다.
박완수 경상남도지사가 지난 6일 대통령 주재 폭염·가뭄 대응 점검회의에서 정부에 저수지 준설 예산 지원과 수리시설 관리체계 개편을 건의한 것은 이러한 현실을 정면으로 지적한 문제 제기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일회성 급수 지원이 아니라 물을 저장하고 관리하는 시스템 자체를 바꾸는 일이다.
가장 눈여겨볼 대목은 '지금이 준설의 적기'라는 판단이다.
가뭄으로 저수지 수위가 크게 낮아진 지금은 장비 투입이 쉽고 공사 비용도 크게 줄일 수 있다. 평상시보다 적은 예산으로 더 많은 퇴적토를 제거할 수 있는 절호의 시기다. 그러나 예산 확보가 늦어지면 수위가 다시 올라 공사 자체가 어려워지고 비용은 훨씬 커진다.
재난 대응에서 가장 비싼 비용은 '때를 놓친 대응'이다.
준설은 단순히 바닥을 파내는 공사가 아니다. 퇴적물을 제거해 저수 용량을 늘리고, 농업용수 확보 능력을 높이며, 다음 가뭄에 대비하는 가장 현실적인 투자다. 물이 부족해진 뒤 급수차를 투입하는 사후 대응보다 훨씬 경제적이고 효과적인 예방 정책이다.
문제는 지방정부의 의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광범위한 저수지 준설과 비상급수 시설 확충에는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다. 지방재정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만큼 국가가 특별교부세나 예비비 등 재정 지원을 통해 선제적으로 나서야 한다. 기후위기는 특정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체가 함께 대응해야 할 재난이기 때문이다.
이번 건의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부분은 수리시설 관리체계 개편이다.
현재 상당수 저수지와 양·배수장은 한국농어촌공사가 관리하고 있다. 전문성과 일관성이라는 장점은 있지만, 지역의 농업환경과 주민 요구를 즉각 반영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현장에 있는 지방정부다.
농업용수 공급 시기, 시설 보수 우선순위, 지역별 가뭄 대응 방식은 지역마다 다르다. 중앙집중형 관리만으로는 다양한 현장 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어렵다. 관리 권한의 일부를 지방정부에 이관하거나 역할을 합리적으로 재조정하는 방안은 이제 충분히 검토할 시점이다.
물론 관리체계 개편이 단순한 권한 이양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지자체의 전문 인력 확보와 예산 지원, 책임 체계가 함께 마련될 때 비로소 현장 중심 행정도 실효성을 가질 수 있다.
기후위기는 더 이상 미래의 위험이 아니다. 폭염과 가뭄은 매년 반복되는 일상이 됐고, 물 관리 정책도 과거의 방식으로는 대응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가뭄이 끝난 뒤 복구 예산을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가뭄이 심화되기 전에 물그릇을 키우는 데 투자해야 한다. 저수지 준설과 수리시설 관리체계 개선은 선택이 아니라 국가 물 관리 전략의 핵심 과제다.
재난은 막을 수 없어도 피해는 줄일 수 있다. 그 출발점은 예산보다 빠른 결단이며, 보여주기식 대책보다 근본적인 제도 개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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