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심도 183억 개발, ‘관광 명소’보다 먼저 지켜야 할 것은 섬의 정체성이다
경상남도와 거제시가 총사업비 183억 원을 투입해 올해 하반기 건축설계 공모를 시작으로 ‘지심도 산마루 문화놀이터 명소화 사업’을 본격 추진한다. 오는 2028년 말 준공을 목표로 산마루 테마정원과 동백숲 들놀이터, 웰니스 시설, 탐방로와 휴게시설 등을 조성하고, 옛 국방과학연구소와 숙소 건물도 교육·체류시설로 리모델링한다는 계획이다.
사업 취지는 분명하다. 오랫동안 군사시설로 관리되면서 상대적으로 개발의 손길이 덜 미친 지심도의 생태자원과 역사·문화자원을 관광자원으로 되살리겠다는 것이다. 지심도는 울창한 동백숲과 해안 절경을 품고 있는 데다 일제강점기 강제이주와 군사기지라는 아픈 역사를 함께 간직한 곳이다.
문제는 바로 이 지점이다.
지심도를 관광지로 개발하는 순간, 지심도의 가장 큰 경쟁력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역설이다.
지심도의 가치는 시설이 많아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이 대규모로 손대지 않았기 때문에 남아 있는 자연과, 쉽게 소비해서는 안 될 역사적 기억이 지심도의 핵심 자산이다.
따라서 183억 원이라는 적지 않은 예산을 투입하는 이번 사업은 ‘얼마나 많은 시설을 만들 것인가’보다 ‘얼마나 적게 훼손하면서 가치를 높일 것인가’를 중심으로 설계돼야 한다.
특히 원시적인 동백숲과 생태환경을 훼손하면서 테마정원이나 휴게시설을 늘린다면 사업의 명분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시설이 오히려 지심도의 자연을 훼손하고, 훼손된 자연을 다시 관광자원으로 포장하는 악순환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
역사성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지심도는 단순한 ‘사랑의 섬’이 아니다. 1936년 일제강점기 주민들이 강제 이주당했고, 이후 군사적 목적으로 활용됐던 공간이다. 그렇다면 지심도의 역사적 공간은 놀이와 소비의 대상으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
‘문화놀이터’라는 이름 아래 역사적 비극이 관광 콘텐츠의 배경으로만 소비된다면 지심도가 가진 장소의 의미는 오히려 퇴색할 수 있다.
옛 국방과학연구소 건물을 교육시설로 활용하는 계획은 이런 우려를 해소할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단순한 전시관을 넘어 왜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는지, 지심도가 어떤 군사적 공간으로 활용됐는지, 그리고 광복 이후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의 지심도에 이르렀는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역사교육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관광객에게 아름다운 풍경만 보여주는 섬이 아니라, 아름다운 풍경 뒤에 숨겨진 역사를 생각하게 하는 섬이어야 한다.
또 하나 놓쳐서는 안 될 문제가 관광 수용력이다.
지심도는 육지와 연결된 대도시 관광지가 아니다. 섬이라는 공간적 한계가 분명하다. 방문객이 급증하면 교통과 숙박 문제뿐 아니라 식수, 상하수도, 쓰레기 처리, 오폐수 관리 등 생활 인프라에 상당한 부담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체류형 관광을 추진한다면 시설부터 늘릴 것이 아니라 섬이 감당할 수 있는 관광객의 적정 규모부터 산정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일일 방문객 수를 제한하는 관광 총량제를 검토하고, 사전에 오폐수 처리와 폐기물 관리, 물 공급 등 환경 인프라를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관광객이 많이 오는 것’이 성공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번 건축설계 공모 역시 단순한 건축물 경쟁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지심도의 지형과 숲을 최대한 보존하고 기존 건축물을 우선 활용하는 친환경·저밀도·최소 개입 원칙이 설계의 핵심이 돼야 한다. 새 건축물을 얼마나 멋지게 만드는가보다 기존 자연과 역사자원을 얼마나 훼손하지 않는지가 평가의 첫 번째 기준이 되어야 한다.
결국 지심도의 미래는 ‘개발하느냐, 개발하지 않느냐’의 이분법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개발하되, 지심도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개발이어야 한다.
경남도와 거제시는 사업 추진 과정에서 환경·역사 전문가뿐 아니라 지역 주민과 시민사회, 생태 전문가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사업의 규모와 시설 배치를 끊임없이 검증해야 한다. 특히 설계 단계부터 생태환경 영향과 관광 수용력에 대한 객관적인 검토를 공개해야 한다.
지심도는 새로운 관광시설을 세운다고 가치가 생기는 섬이 아니다.
이미 그곳에는 수십 년의 시간을 견딘 동백숲이 있고, 남해의 절경이 있으며,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역사가 있다.
183억 원의 목표는 ‘더 많이 보여주는 관광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덜 훼손하고 더 깊이 기억하게 하는 섬’을 만드는 데 있어야 한다.
지심도를 남해안 대표 관광명소로 만들겠다면 관광객 숫자보다 먼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부터 답해야 한다. 그것은 지심도의 자연이고, 역사이며, 결국 지심도라는 섬 자체의 정체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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