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복지, 이제는 ‘먼저 찾아가는 복지’다…4050·AI 복지 확대의 진짜 시험대
경상남도가 민선9기 복지정책의 방향을 분명히 했다. 복지 대상은 넓히고, 복지 전달 방식은 바꾸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복지가 ‘신청한 사람에게 지원하는 복지’였다면 앞으로는 행정이 먼저 위기가구와 돌봄 대상자를 찾아 필요한 서비스를 연결하는 ‘적극복지’로 전환하겠다는 구상이다.
경남도는 12일 도청 프레스센터에서 민선8기 복지여성 분야 성과와 함께 민선9기 3대 복지전략으로 전 세대 맞춤복지, AI·ICT 통합복지, 아이+여성 동행복지를 제시했다.
방향 자체는 옳다.
복지는 제도를 얼마나 많이 만들어 놓느냐보다 정작 필요한 사람이 그 제도를 알고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지의 외연을 넓히는 일에는 반드시 비용이 따른다. 행정이 먼저 찾아가는 복지 역시 더 많은 현장 인력과 정교한 데이터, 책임 있는 행정체계를 요구한다.
따라서 이번 경남의 복지 실험은 ‘복지 확대’라는 말만으로 평가할 일이 아니다. 얼마나 촘촘하게 찾아내고, 얼마나 정확하게 지원하며, 얼마나 오래 지속할 수 있느냐가 진짜 평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 4050 복지포인트, 환영할 일이지만 ‘누구에게 얼마인가’가 관건
이번 정책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4050세대 복지포인트 도입 추진이다.
40~50대는 흔히 복지의 중심에서 비켜나 있던 세대다.
청년 지원과 노인 복지는 비교적 뚜렷한 정책 대상이 존재하지만, 4050세대는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복지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자녀 양육비와 교육비를 감당하면서 부모까지 부양해야 하는 이른바 ‘샌드위치 세대’가 적지 않다. 고용 불안과 조기 퇴직 문제까지 겹치면 경제적 충격은 결코 작지 않다.
따라서 4050세대를 복지정책의 대상으로 끌어들이겠다는 발상은 의미가 있다.
문제는 형평성이다.
경남도 역시 아직 지원 대상과 규모를 확정하지 않고 거주기간과 소득수준 등을 고려한 연구용역을 진행할 계획이다.
그렇다면 더 중요한 것은 정치적으로 인기 있는 포인트 금액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도움이 필요한 4050을 어떻게 가려낼 것인가다.
소득 기준을 지나치게 낮추면 정책 대상이 좁아지고, 반대로 대상을 크게 넓히면 막대한 재정이 필요하다.
결국 4050 복지포인트의 성공 여부는 금액이 아니라 정교한 대상 선정과 지속 가능한 재원 설계에 달려 있다.
■ 가족돌봄청년을 ‘찾아내는 것’부터 복지다
가족돌봄청년 지원도 이번 정책에서 중요한 변화다.
가족을 돌보느라 자신의 학업과 취업, 건강을 포기하는 청년들은 존재하지만 스스로 복지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대상에게 “필요하면 신청하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상 복지 사각지대를 방치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경남도가 가족돌봄청년지원센터를 설치하고 전 시군과 연계해 대상자를 적극 발굴하겠다는 것은 그래서 의미가 크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관건은 발굴 이후다.
대상자를 찾아낸 뒤 돌봄·의료서비스와 자기돌봄비를 연결하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교육, 취업, 정신적 회복, 주거와 경제적 자립까지 연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또 하나의 일회성 복지사업으로 끝날 가능성이 있다.
■ AI 복지,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경남도는 9월 이내 생성형 AI 기반 통합복지플랫폼을 개통하고 복지행정을 자동화해 원스톱 서비스를 구현하겠다고 밝혔다.
시대의 흐름에 맞는 변화다.
복지제도가 복잡해질수록 담당 공무원조차 모든 제도를 완벽하게 파악하기 어렵고, 일반 도민은 자신이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알기 더욱 어렵다.
AI가 흩어진 복지 정보를 통합하고 적합한 서비스를 찾아준다면 분명 행정 효율은 높아질 수 있다.
하지만 AI가 복지를 책임질 수는 없다.
복지 대상자의 현실은 숫자와 데이터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같은 소득이라도 가족구성, 건강상태, 주거환경, 돌봄 부담에 따라 삶의 어려움은 전혀 다를 수 있다.
AI가 놓친 한 사람을 현장 공무원이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AI 통합복지는 ‘AI가 사람을 대신하는 복지’가 아니라 ‘AI가 사람을 더 잘 돕게 하는 복지’가 되어야 한다.
■ 자동지급은 편리하지만 행정의 책임도 커진다
경남도가 국가 복지급여 7종을 자동지급·간주신청 방식으로 단계적으로 전환하고 도 자체 복지급여 8종도 직권신청·직권지급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은 상당히 큰 변화다.
복지정보를 몰라 신청하지 못하는 문제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자동화에는 반드시 오류와 책임의 문제가 따라온다.
대상자를 잘못 판단해 지급하면 재정 누수가 발생할 수 있고, 반대로 필요한 사람을 누락하면 복지 사각지대가 오히려 커질 수 있다.
개인정보가 대규모로 연계되는 과정에서 정보보호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따라서 자동지급을 확대할수록 행정기관은 더욱 강한 검증·이의신청·사후관리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자동’이라는 말이 ‘무책임’을 의미해서는 안 된다.
■ 복지 확대의 가장 현실적인 벽은 결국 재정이다
경남의 민선9기 복지 구상에는 상당한 숫자가 등장한다.
4050 복지포인트, 자활기금 30억 원, 노인일자리 10만 개, 돌봄활동가 5천 명, 통합돌봄서비스 15종, 마을돌봄센터 20개소 추가 확충 등이다.
각각 필요한 정책이지만 모두 시행하려면 결국 재정이 필요하다.
특히 복지는 한번 시작하면 중단하기 어려운 특성이 있다.
일회성 사업과 달리 수혜자에게 지속적인 기대권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복지 확대를 발표할 때는 ‘얼마나 지원할 것인가’와 함께 ‘10년 뒤에도 계속할 수 있는가’를 동시에 설명해야 한다.
복지는 많이 주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다.
재원이 부족해 몇 년 뒤 사업을 축소하거나 중단한다면 오히려 도민의 정책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
■ 현장 공무원에게 ‘적극복지’를 떠넘겨서는 안 된다
‘찾아가는 복지’가 성공하려면 현장 인력이 필요하다.
고령자와 고위험군을 직접 방문하고, 복지 대상자를 발굴하며, 서비스를 연계하고 사후관리까지 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직권신청과 자동지급 업무까지 추가되면 읍면동 복지 담당자의 업무 부담이 오히려 커질 가능성도 있다.
AI가 반복적인 행정업무를 줄여준다고 해도 사례관리와 현장방문은 결국 사람이 해야 한다.
따라서 적극복지를 추진한다면 복지공무원 확충과 전문인력 배치, 민간 복지기관과의 역할 분담까지 함께 설계해야 한다.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겠다면서 정작 복지 담당자의 업무 사각지대를 만드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 아이와 여성 복지는 ‘출산 장려’ 이상의 관점이 필요하다
임신·출산에서 양육, 여성의 자립까지 연결하는 ‘아이+여성 동행복지’ 역시 방향은 분명하다.
난임·임산부 심리상담센터 확대, 공공산후조리원 설치, 산모·신생아 건강관리 지원 확대, 돌봄센터 확충, 방학 중 식사바우처 도입 등은 실제 생활에서 체감할 수 있는 정책들이다.
그러나 출산율 문제를 해결하려면 단순히 출산 직후의 지원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여성이 출산 이후에도 일할 수 있고, 경력을 이어갈 수 있으며, 돌봄 때문에 경제활동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 함께 만들어져야 한다.
경남도가 신산업·고부가가치 직업교육을 확대하고 여성 창업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병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복지는 여성에게 무언가를 더 주는 정책을 넘어 여성이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도록 만드는 정책이어야 한다.
■ 경남 복지의 진짜 시험은 ‘사업 숫자’가 아니다
민선8기 경남도는 희망지원금과 통합돌봄체계를 비롯해 손주돌봄수당, 아이돌봄 지원, 방학 중 아동급식, 경로당 행복식탁 등 생활밀착형 복지를 확대했다고 설명한다.
경남도는 그 결과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도민 생활여건 체감도가 2021년 전국 10위에서 2025년 전국 1위로 상승했다고 밝혔다.
이 성과를 민선9기로 이어가겠다는 것이 이번 계획이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더욱 엄격한 평가가 필요하다.
복지사업의 개수가 얼마나 늘었는지가 아니라 복지 사각지대가 얼마나 줄었는지, 수혜자의 삶이 얼마나 나아졌는지, 자립으로 연결된 사람이 얼마나 늘었는지를 측정해야 한다.
특히 4050 복지포인트와 같은 신규 사업은 만족도 조사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소득 개선, 건강 개선, 경제활동 참여, 삶의 질 변화 등 구체적인 성과지표를 만들어야 한다.
AI 복지 역시 플랫폼 개통 자체가 성과가 되어서는 안 된다.
복지 신청 누락이 얼마나 줄었는지, 처리시간이 얼마나 단축됐는지, 현장 공무원의 행정 부담이 얼마나 감소했는지를 공개해야 한다.
■ 사설|‘적극복지’는 좋은 말이다. 이제 행정이 증명해야 한다
경남도가 선언한 ‘적극복지’는 복지행정이 가야 할 방향 가운데 하나다.
가난한 사람이 제도를 몰라 지원받지 못하고, 돌봄이 필요한 노인이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며, 가족돌봄청년이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상황을 행정이 그대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필요한 사람을 먼저 찾아가는 것.
그것이 복지행정의 기본이어야 한다.
그러나 찾아가는 복지는 찾아갈 사람과 찾아갈 예산, 그리고 찾아낸 뒤 책임질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4050 복지포인트도 마찬가지다.
중장년층을 복지의 새로운 대상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필요하지만 인기영합식 보편복지로 흘러서는 안 된다.
AI도 마찬가지다.
첨단 기술을 도입했다는 사실보다 한 명의 복지대상자라도 더 정확하게 찾아내고, 한 명의 행정공무원이라도 더 중요한 현장업무에 집중하게 만드는 것이 성과다.
결국 민선9기 경남 복지의 성패는 사업의 화려한 숫자에 있지 않다.
“도민이 도움을 요청하기 전에 행정이 먼저 손을 내밀었는가.”
이 질문에 얼마나 많은 도민이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느냐가 진짜 성적표가 되어야 한다.
경남이 말하는 ‘적극복지’가 구호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복지행정의 표준이 되기를 기대한다. 동시에 그 과정에서 발생할 재정 부담과 행정 책임까지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도민에 대한 최소한의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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