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함정 MRO 방산혁신클러스터 본격 가동…490억 투입, ‘K-방산 정비 생태계’ 시험대
경상남도가 함정 MRO(유지·보수·정비) 산업을 미래 방위산업의 새로운 성장축으로 키우기 위한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경남도는 12일 경남창원방위산업진흥센터에서 경남도 행정부지사와 방위사업청 방위산업진흥국장을 비롯해 부산·울산광역시,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군, 산업계 관계자 등 17명의 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함정 MRO 방산혁신클러스터 지역협의회’ 제1차 정기회를 열고 2026~2030년 사업계획과 2026년 사업계획을 원안 의결했다.
이번 사업에는 경남을 중심으로 부산·울산·전남광주가 참여한다. 지역마다 역할도 나눴다. 경남은 종합지원센터, 부산은 방산 품질인증센터, 울산은 인력양성센터, 전남광주는 협력사 지원센터를 맡는다.
겉으로 보면 상당히 짜임새 있는 광역 방산 협력체계다.
그러나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함정을 잘 만드는 것과 함정을 세계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정비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 함정 MRO, 왜 지금 경남이 주목해야 하나
MRO는 Maintenance, Repair and Overhaul의 약자로 함정의 유지·보수·정비를 의미한다.
방산업계에서는 함정 건조 이후 발생하는 장기간의 정비와 성능개량, 부품 교체, 수리 등을 포함하는 거대한 후속시장으로 평가된다.
특히 함정은 한번 건조하면 수십 년 동안 운용되는 만큼 건조 이후의 유지관리 시장이 장기간 지속된다는 특징이 있다.
이는 경남에 상당히 중요한 기회다.
경남은 창원을 중심으로 방산 제조업 기반이 집적돼 있고, 조선·기계·전자·정밀가공 등 함정 MRO와 연계할 수 있는 산업 기반도 갖추고 있다.
따라서 함정 MRO를 단순히 ‘배를 고치는 산업’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부품 → 정비 → 성능개량 → 디지털 정비 → 수출 → 후속군수지원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방산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 490억 원 투입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쓰느냐’다
이번 함정 MRO 방산혁신클러스터의 핵심은 경남에 구축되는 종합지원센터다.
경남도는 2027년까지 종합지원센터를 완공하고 광역 클러스터의 주요 의사결정과 지역 간 사업 연계 등을 총괄한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건물 자체가 아니다.
방산 지원센터가 또 하나의 행정기관으로 남는다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도 기업이 체감하는 변화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종합지원센터는 기업이 실제로 필요한 것을 해결해주는 ‘방산 MRO 컨트롤타워’가 되어야 한다.
기업이 해외 정비시장에 진출하려면 어떤 인증이 필요한지, 어떤 보안요건을 충족해야 하는지, 어떤 해외 발주처와 연결해야 하는지까지 원스톱으로 지원해야 한다.
특히 중소기업에게 필요한 것은 홍보성 설명회가 아니다.
인증 취득, 시험평가, 보안체계 구축, 해외 바이어 연결, 수출계약, 후속 정비까지 이어지는 실질적인 기업 지원이다.
12일 ‘함정 MRO 방산혁신클러스터 지역협의회’ 제1차 정기회 모습
■ 광역 협력의 성공 여부, 결국 ‘지역 이기주의’에 달렸다
이번 사업의 장점은 분명하다.
경남 혼자 모든 기능을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부산·울산·전남광주가 전문 분야별 역할을 나눴다는 점이다.
경남은 종합지원, 부산은 품질인증, 울산은 인력양성, 전남광주는 협력사 지원을 담당한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위험요소도 생긴다.
광역사업은 사업 초기에는 협력이 잘되다가 예산과 성과가 배분되는 단계에서 지역 간 주도권 경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각 지역이 자기 지역의 기업과 예산을 우선시하기 시작하면 클러스터는 순식간에 ‘공동사업’이 아니라 ‘지역별 사업의 묶음’으로 전락할 수 있다.
따라서 경남의 종합지원센터가 이름뿐인 컨트롤타워가 되어서는 안 된다.
누가 어떤 사업을 맡고, 성과를 어떻게 공유하며, 기업은 어느 지역의 센터를 이용할 수 있는지까지 명확한 운영체계가 필요하다.
■ 진짜 약점은 대기업이 아니라 중소기업이다
함정 MRO 산업의 글로벌화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봐야 할 곳은 대기업이 아니다.
오히려 지역 중소·중견 방산기업이다.
대형 조선·방산기업은 일정 수준의 품질관리와 보안체계를 갖추고 있지만, 중소 기자재 업체들은 해외 군수시장 진입에 필요한 인증과 보안요건을 충족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특히 미국 등 해외 군수시장 진출을 목표로 한다면 국제적인 품질·보안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결국 지역기업의 경쟁력을 높이지 않고 대형 기업 중심으로 MRO 시장을 추진한다면 지역경제 파급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방산혁신클러스터의 성과지표도 단순히 ‘지원기업 몇 곳’으로 잡아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 해외 인증 취득 기업 수
-. 해외 정비시장 진출 기업 수
-. 신규 수출계약 규모
-. MRO 관련 신규 고용
-. 지역 중소기업의 원청·해외 공급망 진입
-. 국산 부품 적용 확대
등 기업의 실제 성장을 측정할 수 있는 지표가 필요하다.
■ 함정 MRO의 또 다른 승부처는 ‘사람’이다
함정 MRO는 단순한 제조업이 아니다.
노후 부품을 분석하고, 단종 부품을 대체하며, 기존 설비를 역설계하고, 함정의 복잡한 시스템을 진단해야 한다.
따라서 단순히 조선업 인력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조선·기계·전자·ICT·소프트웨어를 동시에 이해하는 융합형 MRO 인력이 필요하다.
울산에 인력양성센터를 구축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교육기관에서 자격증을 발급하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실제 함정과 유사한 장비를 활용한 실습, 디지털 트윈, 스마트 정비, 역설계, 고장진단, 부품 국산화 등 현장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는 교육체계가 필요하다.
방산 MRO 시장에서 결국 경쟁력은 기술과 사람에서 나온다.
■ ‘수출’이 최종 목표라면 처음부터 글로벌 기준으로 설계해야
경남이 함정 MRO를 미래 성장산업으로 키우려는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해외시장이다.
국내 함정 유지·보수 시장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해외 해군의 함정 정비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면 국내 방산기업에는 새로운 장기 수익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해외 MRO 시장은 단순히 “한국의 기술력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열리지 않는다.
가격, 납기, 품질, 인증, 보안, 현지 대응능력, 부품 공급망, 후속지원을 모두 갖춰야 한다.
따라서 함정 MRO 방산혁신클러스터는 처음부터 해외시장 진출을 전제로 설계해야 한다.
국내에서 기술을 개발한 뒤 해외시장에 나가는 방식보다 해외 발주처가 요구하는 기준을 먼저 파악하고 국내 기업을 그 기준에 맞춰 육성하는 전략이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 경남 함정 MRO의 성공 조건은 ‘센터’가 아니라 ‘생태계’
결국 이번 사업의 성패는 종합지원센터 건립 여부로 결정되지 않는다.
센터가 완공됐다는 사실은 시작일 뿐이다.
진짜 성과는 5년 뒤 지역기업들이 얼마나 성장했는지로 판단해야 한다.
첫째, 경남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둘째, 중소기업의 국제 인증과 보안체계 구축을 지원해야 한다.
셋째, 전문 MRO 인력을 장기적으로 양성해야 한다.
넷째, 연구개발과 부품 국산화를 MRO 사업과 연결해야 한다.
다섯째, 처음부터 미국 등 해외시장 진출을 염두에 둔 수출형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이 다섯 가지가 갖춰져야 함정 MRO 클러스터가 단순한 정부 지원사업을 넘어 경남의 새로운 산업 성장동력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 사설|‘배를 만드는 경남’에서 ‘배의 생애를 책임지는 경남’으로
경남의 방위산업은 새로운 전환점에 서 있다.
지금까지 방산의 핵심이 무기체계와 함정을 얼마나 잘 생산하느냐였다면 앞으로는 그 무기를 얼마나 오래, 안정적으로 운용하게 해주느냐가 새로운 경쟁력이 될 수 있다.
함정 MRO는 바로 그 시장이다.
경남·부산·울산·전남광주가 힘을 합쳐 광역 클러스터를 구축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정부 예산을 투입하고 센터를 짓는 것만으로 산업이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이 실제로 돈을 벌고, 청년이 양질의 일자리를 얻고, 지역 중소기업이 해외 방산 공급망에 진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방산혁신클러스터라는 이름에 걸맞은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경남은 이번 사업에서 ‘주관 지역’이라는 명칭보다 ‘실질적인 컨트롤타워’라는 역할을 증명해야 한다.
광역 협력이 지역 간 예산 나눠먹기로 변질돼서는 안 된다.
경남의 종합지원센터가 기업의 애로를 해결하고 부산의 품질인증센터, 울산의 인력양성센터, 전남광주의 협력사 지원센터가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결국 함정 MRO 방산혁신클러스터의 성패는 센터를 짓는 데 있지 않다. 5년 뒤 경남 기업이 얼마나 많은 글로벌 정비시장을 확보했느냐에 달려 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는 한 가지 질문에 답해야 한다.
“5년 뒤 경남의 방산기업이 함정 MRO를 통해 얼마나 많은 해외시장을 확보했는가?”
이 질문에 숫자로 답할 수 있다면 이번 490억 원 투자는 산업의 씨앗이 될 것이다.
반대로 센터와 회의체만 남는다면 또 하나의 지역산업 지원사업으로 끝날 수 있다.
경남 함정 MRO의 진짜 승부는 이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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