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7,400만원 투입해 3개월 연구…8개 과제 단 한 건도 탈락·조건부 가결 없어
경상남도의회가 또다시 ‘의원 연구용역’의 실효성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
지난 8월 18일 열린 2026년 제2회 경상남도의회 정책연구용역 심의위원회에서 제13대 전반기 경남도의회 출범 이후 새롭게 등록된 8개 의원 연구단체가 신청한 정책연구용역 8건이 모두 가결됐다.
교육격차 해소, 경남형 통합돌봄 모델, 폐교 및 유휴시설 활용, 도시공간 재창출, 의회사무처 인력 효율화 등 과제 자체만 놓고 보면 경남의 현실적인 현안을 겨냥하고 있다.
문제는 8건 모두 통과됐다는 사실이다.
정책연구용역 심의위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의원 연구단체가 제출한 과제의 필요성, 차별성, 예산 적정성, 정책 활용 가능성을 따져 불필요하거나 중복되는 연구는 걸러내기 위해서다.
그런데 신청한 8건을 단 한 건도 탈락시키지 않았다면 도민 입장에서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무엇을 심의한 것인가.
1억7,400만원 혈세 투입…3개월 뒤 무엇이 남는가
이번 8개 연구용역에는 과제당 2,000만~2,200만원씩 모두 1억7,400만원의 도비가 투입된다.
연구 기간은 고작 3개월이다.
물론 지방의회의 정책 역량을 높이기 위한 연구 자체를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 의원들이 현장의 문제를 연구하고 전문가의 분석을 통해 조례와 정책으로 연결하는 것은 지방의회의 중요한 기능이다.
그러나 수천만원의 예산을 투입하고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연구를 끝내야 한다면 과연 얼마나 깊이 있는 현장조사와 정책 검증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이미 정부와 국책연구기관, 대학,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 수차례 연구된 주제라면 더욱 그렇다.
기존 자료를 모아 정리하고 해외·타 지자체 사례를 나열한 뒤 몇 가지 정책 제안을 붙이는 방식의 ‘보고서 만들기식 연구용역’이라면 도민 혈세를 투입할 이유가 없다.
‘교육격차·통합돌봄’…좋은 주제라고 좋은 연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번 연구과제 가운데 교육격차 해소와 통합돌봄, 폐교 활용 등은 분명 중요한 정책 분야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제목이 아니다.
‘경남에서 왜 필요한가’, ‘기존 정책과 무엇이 다른가’, ‘실제로 얼마의 예산이 필요한가’, ‘누가 언제 어떻게 실행할 것인가’가 연구의 핵심이어야 한다.
특히 교육격차나 돌봄 문제처럼 이미 수많은 선행연구가 축적된 분야라면 경남만의 지역적 특성과 행정 여건을 정확하게 분석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새로운 연구가 아니라 기존 연구의 재포장에 불과할 수 있다.
의원연구용역은 학술대회용 논문이 아니다. 도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지는 정책 생산 도구다.
따라서 최종 보고서에는 그럴듯한 원론보다 실제 조례와 예산, 사업으로 연결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행계획이 담겨야 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연구 결과가 사라지는 것’이다
지방의회 의원연구용역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가장 큰 문제는 연구가 끝난 뒤다.
수천만원을 들여 보고서를 만들고도 실제 도정에 반영되지 않는다면 그 연구는 결국 책장 속에 묻히는 보고서가 된다.
연구 결과가 5분 자유발언이나 도정질문의 자료로 한두 차례 활용되는 데 그친다면 그것 역시 충분한 성과라고 보기 어렵다.
정책연구용역의 최종 목적은 보고서 제출이 아니라 정책 변화여야 한다.
조례가 바뀌었는가.
경남도의 예산에 반영됐는가.
경남도와 경남교육청의 실제 사업으로 이어졌는가.
도민에게 돌아가는 서비스가 달라졌는가.
이런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연구용역이 끝난 뒤 그 결과가 실제 정책으로 얼마나 반영됐는지 추적·평가하는 장치가 없다면 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심의위원회가 ‘거수기’라는 비판을 받아서는 안 된다
이번 전원 가결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은 심의 기능의 형식화다.
물론 8개 과제가 모두 우수해서 통과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그럴수록 심의 과정에서 왜 모두 필요한지, 어떤 기준으로 통과시켰는지를 도민에게 투명하게 설명해야 한다.
정책연구용역 심의위원회가 단순히 의원 연구단체가 신청한 과제를 승인하는 절차에 그친다면 존재 이유가 약해진다.
필요성이 부족한 연구는 탈락시키고, 중복성이 높은 연구는 통합하거나 보완하도록 요구하며, 정책 활용 가능성이 떨어지는 과제는 조건부로 수정하도록 하는 것이 심의위원회의 역할이다.
‘전원 통과’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전원 통과할 수밖에 없었던 엄격한 심의 근거가 있었느냐가 핵심이다.
이제부터라도 중간평가와 사후평가를 강화해야 한다
이미 가결된 8개 연구용역을 무조건 문제 삼을 필요는 없다.
오히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연구 시작 단계부터 경남도와 경남교육청 등 집행부 관련 부서와 긴밀하게 협의하고, 연구진이 현장조사와 주민 의견수렴을 충분히 진행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3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중간평가와 최종평가를 엄격하게 실시해 부실한 연구 결과물이 그대로 제출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최종보고서 역시 의회 홈페이지를 통해 전면 공개하고, 연구 결과를 토대로 한 정책토론회와 도민 공청회를 개최할 필요가 있다.
특히 연구 종료 후에는 반드시 성과를 추적해야 한다.
조례 제·개정으로 이어졌는지, 실제 예산에 반영됐는지, 집행부 정책으로 채택됐는지, 도민에게 어떤 변화가 발생했는지를 평가해야 한다.
성과가 확인되지 않는 연구단체에 대해서는 차기 정책연구용역 선정 과정에서 감점을 주는 등 책임성도 강화해야 한다.
경남도의회가 보여줘야 할 것은 ‘연구 건수’가 아니다
지방의원의 정책 역량을 높이는 연구는 필요하다.
그러나 연구용역의 숫자가 많다고 의정활동의 수준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1억7,400만원을 투입해 8개의 보고서를 만드는 것보다 단 한 건의 연구라도 실제 조례와 예산, 정책으로 연결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경남도민이 원하는 것은 의원들의 연구실적 목록이 아니다.
자신들이 낸 세금이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쓰였는지, 그 연구가 실제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이번 8개 연구용역은 경남도의회가 스스로 그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시험대가 됐다.
8건 모두 통과시킨 만큼 이제 결과에 대한 책임도 분명해야 한다.
보고서를 위한 연구가 아니라 정책을 위한 연구여야 한다.
그리고 3개월 뒤 도민 앞에 내놓는 것은 두꺼운 보고서가 아니라 실제로 실행 가능한 정책과 조례, 예산으로 이어지는 구체적인 성과여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번 1억7,400만원의 정책연구용역은 또 하나의 ‘의원실 책장용 보고서’를 만드는 데 혈세를 쓴 사례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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