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군수와 지역구 도의원, 왜 소통하지 않았나…‘협치 부재’가 더 큰 문제다
행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성과다. 그러나 지방자치에서 성과만큼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과정과 협력이다.
경남 남해군의 농어촌기본소득 도비 82억8800만원 확보 과정을 둘러싸고 류경완 남해군수와 김창우 경남도의원 사이에 ‘소통 부재’ 논란이 불거진 것은 그래서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21일 지역 정가 등에 따르면 류 군수는 농어촌기본소득의 도비 분담률을 당초 계획인 30%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다른 지역 경남도의원들에게 협조를 요청했지만, 정작 남해 지역구 도의원인 김창우 의원과는 별도의 협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남해의 예산을 확보하는 일에 남해를 지역구로 둔 도의원이 빠져 있었다면, 과연 그것을 정상적인 협치라고 부를 수 있는가.
농어촌기본소득 도비 확보, 결과만 보면 성공이다
우선 결과부터 냉정하게 보자.
남해군 농어촌기본소득 시범사업은 당초 국비 40%, 도비 30%, 군비 30%의 재원 분담을 전제로 추진됐다.
하지만 실제 편성 과정에서는 국비 40%, 도비 18%, 군비 42%가 됐다. 도비 부담이 줄어든 대신 그만큼 남해군의 재정 부담이 커지는 구조였다.
이후 경남도가 추가경정예산안에 82억8800만원의 도비를 추가 편성했고, 경남도의회가 이를 의결하면서 도비는 기존 124억3300만원에서 207억2100만원으로 늘었다.
결과적으로 당초 목표였던 도비 30% 수준이 회복됐고, 남해군의 군비 부담도 약 82억8800만원 줄었다.
이 점은 분명히 평가해야 한다.
남해군 입장에서 82억8800만원은 결코 작은 돈이 아니다.
지역 현안에 사용할 수 있는 재정 여력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이번 도비 증액 자체는 분명한 성과다.
그렇다면 이제 남는 질문은 하나다.
그 성과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왜 지역구 도의원과의 소통은 부족했느냐는 것이다.
‘정당이 다르다’는 이유가 협치의 장벽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번 논란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대목은 류경완 군수(더불어민주당)와 김창우 도의원(국민의힘)의 소속 정당이 다르다는 점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협치가 필요하다.
군수는 군민 전체를 대표하고, 도의원 역시 특정 정당의 이익보다 지역 주민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
남해군의 예산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민주당 소속 군수가 국민의힘 소속 지역구 도의원에게 협조를 요청하는 것은 정치적 양보가 아니다.
반대로 국민의힘 소속 도의원이 민주당 소속 군수의 사업을 지원한다고 해서 정당성을 잃는 것도 아니다.
그것이 지방자치의 기본적인 협치다.
정당은 다를 수 있다.
정책에 대한 견해도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지역의 예산과 주민의 먹거리, 지역경제와 미래사업까지 정당의 경계선 안에 가둬버린다면 피해를 보는 것은 결국 군민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오히려 지역구 도의원부터 찾아가는 것이 순서 아닌가
이번 사안에서 특히 아쉬운 부분은 ‘누구에게 협조를 요청했느냐’다.
경남도의회에서 예산을 심의·의결하는 과정이라면 지역구 도의원의 역할은 결코 작지 않다.
그렇다면 군수가 가장 먼저 찾아야 할 사람은 다른 지역 도의원이 아니라 남해를 지역구로 둔 도의원이어야 한다는 지적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물론 남해군수가 다른 지역 도의원들에게 협조를 요청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볼 수는 없다.
예산은 결국 도의회 전체의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역구 의원과 기본적인 정보를 공유하고 공조하는 것과, 지역구 의원을 사실상 배제한 채 다른 의원들과 협조를 구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협치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지역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행정의 기본 인프라에 가깝다.
더구나 류경완 군수라면 누구보다 잘 알 문제다
이번 논란이 더욱 아쉬운 이유는 류경완 군수가 과거 경남도의원을 지낸 정치인이라는 점이다.
도의회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예산 심의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지역구 도의원이 지역 현안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더욱더 지역구 도의원과의 사전 조율이 필요했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예산을 확보하려면 의회가 필요하고, 의회의 협조가 필요하다면 정치적 소통이 필요하다.
이것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당이냐 국민의힘이냐의 정당 소속 문제도 아니다.
행정의 기본적인 작동 방식에 관한 문제다.
‘직무유기’라는 비판까지 나오는 이유
그렇다면 질문을 더 직설적으로 던져볼 필요가 있다.
지역의 중요한 현안을 두고 정당이 다르다는 이유로 협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법률적 의미의 ‘직무유기’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치적·행정적 책임이라는 차원에서는 충분히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군수에게는 지역 발전을 위해 필요한 정치적 네트워크를 최대한 활용할 책임이 있다.
도의원에게는 소속 정당과 관계없이 지역 현안에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고 정책을 지원할 책임이 있다.
따라서 양측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누가 먼저 연락했느냐’를 따지는 정치가 아니라 ‘남해를 위해 어떤 협력 구조를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는 정치다.
남해에는 농어촌기본소득만 있는 것이 아니다
더 중요한 문제는 앞으로다.
남해에는 농어촌기본소득 외에도 해결해야 할 현안이 적지 않다.
특히 남해~여수 해저터널, 광역교통망 구축, 지역경제 활성화, 인구감소 대응, 관광산업 육성, 생활SOC 확충 등은 남해군청만의 힘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경남도의 지원이 필요하고, 경남도의회의 예산 협조도 필요하다.
그렇다면 군수와 지역구 도의원이 서로 다른 정당이라는 이유로 협력하지 못한다면 앞으로의 대형 사업에서 누가 손해를 보는가.
군수도 아니다.
도의원도 아니다.
결국 남해군민이다.
이것이 이번 소통 논란을 단순한 정치적 신경전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되는 이유다.
선거는 끝났고, 이제는 ‘남해의 시간’이어야 한다
남해군의회 박종식 의원이 지난 7월 본회의 5분 자유발언에서 “선거는 끝났다. 이제는 경쟁이 아닌 협력의 시간”이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치인에게 선거는 중요하다.
그러나 선거가 끝난 순간부터 정치의 목적은 달라져야 한다.
선거에서 경쟁했던 상대방과도 지역 발전을 위해 손을 잡아야 한다.
특히 지방자치는 중앙정치보다 더욱 그렇다.
남해에서 민주당 표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국민의힘 표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남해에 필요한 것은 국비와 도비, 기업 투자와 일자리, 관광객과 인구, 그리고 지역경제를 살릴 실질적인 사업이다.
그것을 가져오는 데 정당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남해군에 필요한 것은 ‘협치 선언’이 아니라 ‘협치 시스템’이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남해군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말로만 협치를 외칠 것이 아니라 상시적인 정치권 협력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군수와 지역구 도의원, 남해군의회, 국회의원 등이 정기적으로 만나 주요 현안과 국·도비 확보 전략을 공유하는 협의체를 만들 필요가 있다.
예산을 신청하기 직전에 연락하는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사업을 구상하는 단계부터 정보를 공유하고, 중앙정부와 경남도에 어떤 방식으로 접근할지 함께 전략을 세워야 한다.
‘사후 통보형 행정’에서 ‘사전 협의형 행정’으로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것이 진짜 협치다.
남해의 먹거리를 놓고 정치적 자존심을 세울 때가 아니다
이번 농어촌기본소득 도비 확보는 결과적으로 남해군에 큰 재정적 도움이 됐다.
그러나 과정에서 불거진 소통 논란은 별개의 문제다.
성과가 좋았다고 과정의 문제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앞으로 남해에는 수백억, 수천억원의 예산이 필요한 사업들이 계속 등장할 것이다.
그때마다 군수와 도의원이 서로 다른 정당이라는 이유로 경쟁하고 견제하는 데 힘을 쏟는다면 남해의 미래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정치인은 정당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군민은 정당을 선택하기 전에 지역의 미래를 선택한다.
남해군수와 지역구 도의원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정치적 승패가 아니다.
남해의 예산을 더 가져오고, 남해의 일자리를 더 만들고, 남해의 인구를 지키고, 남해의 미래 먹거리를 만드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정당이 다르다는 이유로 손을 잡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지방자치가 가장 경계해야 할 정치의 모습이다.
이번 논란이 서로를 탓하는 또 하나의 계파 싸움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를 계기로 ‘남해를 위해서라면 여야가 따로 없다’는 협치의 원칙을 실제 행정에 정착시키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선거는 4년마다 하지만, 남해의 미래는 매일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미래를 만드는 데 정당의 색깔보다 중요한 것은 누가 남해를 위해 함께 뛰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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