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 9기 출범하자마자 ‘민생지원금 경쟁’…민생인가, 선심행정인가
2026년 추석을 앞두고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이 민생안정지원금을 앞다퉈 꺼내 들고 있다.
경남 의령군과 전남 함평군은 1인당 최대 50만원, 통영시는 35만원, 전북 완주군과 충북 영동군은 30만원 수준의 지원을 추진하거나 지급하고 있다.
고물가와 고유가로 가계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주민들에게 현금을 지급하거나 지역화폐를 풀어 소비를 촉진하겠다는 취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민선 9기가 출범하자마자 마치 ‘우리 지역도 얼마를 줄 수 있는가’를 경쟁하는 듯한 모습이 나타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더구나 지방정부의 재원은 지자체장의 개인 돈도, 선거자금도 아니다. 분명한 것은 그게 주민이 낸 세금이고, 미래 세대가 함께 부담해야 할 지방재정이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우리도 50만원 주자”는 식의 박수받는 행정이 아니다.
그 50만원이 정말 주민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민선 9기 출범 초기에 주민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기 위한 정치적 이벤트인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민선 9기 출범하자마자 왜 ‘지원금 경쟁’부터 시작됐나
지방자치단체가 주민에게 긴급한 경제적 지원을 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문제는 시점과 방식, 그리고 재정적 지속 가능성이다.
민선 9기가 새롭게 출범한 직후부터 일부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수십만원의 민생지원금을 내놓으면서 국민에게 보여지는 모습은 자칫하면 이렇다.
“옆 동네가 50만원 주는데 우리도 줘야 한다.” 이것이 행정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지방행정은 인기투표가 아니다. 옆 지자체가 50만원을 준다고 해서 우리 지자체도 50만원을 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장·군수와 지방의회가 해야 할 일은 정반대다. “우리 지역의 재정 상황에서 지금 이 돈을 쓰는 것이 최선인가?” 이 질문부터 해야 하는 게 먼저이다.
‘민생’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모든 지출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민생이라는 단어는 정치권과 행정에서 가장 강력한 명분 가운데 하나다.
누가 “민생을 위한 지원을 반대한다”고 말하기 쉽겠는가.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더 엄격하게 따져야 한다.
민생이라는 이름표가 붙었다고 해서 재정 지출의 타당성 검증까지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1인당 50만원을 지급한다고 가정해보자. 주민이 많을수록 필요한 재원은 수백억원 규모로 커질 수 있다.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예비비를 사용하거나 통합재정안정화기금 등을 활용한다면 결국 다른 사업에 사용할 수 있는 재원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질문은 간단하다.
“오늘 주민에게 50만원을 나눠준 대가로 내일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가?”
도로와 하천 정비인가.
노후 상하수도 개선인가.
청년 일자리인가.
복지시설 확충인가.
농어촌 지원인가.
재난 예방시설인가.
이 질문에 명확하게 답하지 못한다면 지원금 정책은 단순한 ‘민생정책’이라고 포장하기 어렵지 않나 말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지자체장 인기 경쟁’으로 변질될 가능성이다
민선 9기가 막 출범한 시점이라는 점도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선거가 끝났다고 정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새 지방정부는 임기 초반 주민들에게 정책 성과를 각인시키려는 유혹을 받을 수 있다.
이때 가장 손쉬운 정책이 무엇인가. 돈을 직접 지급하는 것이다.
도로를 새로 건설하는 데는 수년이 걸린다.
청년 일자리를 만드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기업을 유치하는 일은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지원금은 예산만 확보하면 상대적으로 빠르게 주민들에게 체감 효과를 보여줄 수 있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할 것이다. 행정의 성과가 ‘얼마나 많은 주민에게 돈을 나눠줬느냐’로 평가되기 시작하면 지방자치의 본질이 흔들린다.
민선 9기가 정말 주민을 위한 지방정부라면 돈을 뿌리는 데 경쟁할 것이 아니라 일자리와 기업, 인구와 산업, 교육과 의료, 생활 인프라를 놓고 경쟁해야 한다.
“옆 동네는 50만원인데 우리는 왜 없나?”…형평성의 함정
지원금 경쟁은 또 다른 문제를 만든다. 바로 지역 간 형평성 논란이다.
의령군에서는 50만원을 받고, 통영시에서는 35만원을 받고, 다른 지자체에서는 아무것도 받지 못한다면 주민 입장에서는 당연히 비교하게 된다.
“왜 우리는 안 주느냐”는 불만이 나오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지원금을 지급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결국 ‘주는 곳이 이기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재정 여력이 충분한 지자체는 계속 지급할 수 있지만 재정이 취약한 지자체는 주민들의 압박을 받으면서도 지급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그러면 지방자치가 지역 특성에 맞는 정책을 펼치는 제도가 아니라 현금 지급 능력을 놓고 경쟁하는 제도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이것이 진짜 지방자치인가.
가난한 지자체일수록 더 조심해야 한다
특히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심각한 농어촌 지역일수록 현금성 지원금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 세입 기반은 약한데 주민들의 복지 수요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회성 지원금을 대규모로 지급하면 당장은 주민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다.
가계재정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지방재정은 한번 무너지면 회복하기 어렵다. 그래서 오늘의 박수를 위해 내일의 재정을 희생해서는 안 된다.
지방정부가 진정으로 주민을 위한다면 지원금을 지급하기 전에 반드시 공개해야 한다.
-. 전체 지급 규모는 얼마인가.
-. 재원은 어디에서 마련했는가.
-. 예비비와 기금 사용 규모는 얼마인가.
-. 지원금 지급으로 축소·연기되는 사업은 없는가.
-. 내년에도 동일한 지원이 가능한가.
-. 실제 지역경제에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는가.
이 정도는 주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모든 주민에게 똑같이 주는 것이 정말 ‘공정한 복지’인가
또 하나 짚어야 할 부분이 있다. 모두에게 똑같이 지급하는 것이 과연 가장 효율적인 민생정책인가?
고소득 가구와 저소득 가구에 똑같이 50만원을 지급하는 방식은 행정적으로는 단순하다. 하지만 재정이 한정되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고물가로 식료품비와 공과금 부담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취약계층에게는 50만원이 절실할 수 있다. 반면 상대적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계층에게 지급되는 동일한 50만원은 정책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
그렇다면 차라리 저소득층, 고령층, 한부모가정, 소상공인 등 실제로 고물가 충격을 크게 받는 계층에 집중하는 방식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
민생을 위한다면 ‘모두에게 똑같이’보다 ‘가장 필요한 사람에게 제대로’가 우선되어야 하는 게 오히려 맞는 것이다.
지역경제 살리겠다고 돈을 뿌렸다면 성적표를 공개하라
민생지원금의 주요 명분 가운데 하나는 지역경제 활성화다. 지역화폐나 지역사랑상품권으로 지급하면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의 소비를 늘릴 수 있다는 논리다.
그렇다면 당연히 사후 평가가 따라와야 한다.
정말 지역경제가 살아났는가?
지원금 지급 전후 카드 매출은 얼마나 달라졌는가.
전통시장 매출은 얼마나 증가했는가.
소상공인 매출은 실제로 늘었는가.
지원금 100억원을 투입해 추가로 발생한 지역 내 소비는 얼마인가.
이런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
그런데 돈을 지급할 때는 ‘민생’이라고 홍보하면서 효과를 측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책이라기보다 정치적 이벤트에 가까워질 수 있다.
민생지원금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이번 논쟁의 핵심은 민생지원금 지급 자체를 무조건 반대하자는 것이 아니다.
재난이나 급격한 물가 상승 등 특별한 상황에서는 지자체가 주민들에게 긴급하게 지원할 필요가 있다.
지역경제가 심각하게 위축된 경우 지역화폐 등을 활용한 소비 진작 정책도 일정한 의미가 있을 수 있다.
문제는 명확한 기준 없이 경쟁적으로 확대되는 현금성 지원이다. 특히 민선 9기 출범 초기에 각 지자체가 서로의 지원 규모를 의식해 경쟁하는 모습으로 비친다면 더욱 신중해야 한다.
행정은 선거가 끝난 뒤부터 오히려 더 냉정해야 한다. 표를 얻기 위한 정책과 주민을 살리기 위한 정책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민선 9기가 경쟁해야 할 것은 ‘지원금 액수’가 아니다
민선 9기 지방정부가 정말 경쟁해야 할 분야는 따로 있다.
누가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드는가.
누가 더 많은 기업을 유치하는가.
누가 청년이 떠나지 않는 지역을 만드는가.
누가 소상공인이 폐업하지 않는 경제 생태계를 만드는가.
누가 아이를 키우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가.
누가 의료·교통·교육 인프라를 제대로 갖추는가.
이것이 지방정부의 진짜 경쟁력이다.
50만원을 한 번 지급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주민이 매달 안정적인 소득을 얻도록 만드는 것은 어렵다.
그 어려운 일을 해내는 것이 행정의 실력이다.
결론|민선 9기, ‘돈을 뿌리는 지방정부’가 아니라 ‘미래를 만드는 지방정부’가 돼야 한다
민선 9기의 출범과 함께 민생안정지원금 경쟁이 확산되는 모습은 주민들에게 분명 달콤하다. 그러나 지방정부의 곳간을 바라보는 시선만큼은 냉정해야 한다.
지방재정은 지자체장의 정치적 자산이 아니다. 주민의 세금이며 미래 세대의 몫이다.
따라서 수십만원의 지원금을 지급하려면 그 돈이 어디에서 왔는지, 왜 지금 필요한지, 어떤 효과가 있었는지, 그리고 그 결과 미래의 지방재정에 어떤 부담이 남는지를 주민 앞에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특히 민선 9기가 출범하자마자 지자체들이 서로 경쟁하듯 지원금을 확대한다면 더욱 경계해야 한다.
“우리도 주겠다”는 식의 경쟁은 지방자치가 아니다.
“우리 지역의 재정을 지키면서 주민의 삶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를 놓고 경쟁하는 것이 지방자치다.
추석 한 번을 위한 50만원보다 중요한 것은 추석이 지나고도 계속되는 주민들의 삶이다.
오늘 주민들에게 박수를 받는 행정보다 5년 뒤 주민들이 “그때 그 시장·군수가 우리 지역의 미래를 제대로 준비했다”고 평가할 수 있는 행정이 훨씬 가치 있다.
민선 9기 지방정부에 묻는다.
주민에게 얼마를 나눠줄 것인가가 아니라, 주민이 왜 계속 지원금을 받아야 하는 사회가 됐는지를 먼저 고민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민생’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결국 선심성 행정, 포퓰리즘 논란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지금 필요한 것은 지원금 경쟁이 아니라 행정 경쟁이다. 따라서 돈을 뿌리는 경쟁을 멈추고, 지역의 미래를 만드는 경쟁을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재정 곳간 허물어 표심 겨냥한 선거공약식 행정이라면 당장 멈춰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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