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정점식 원내대표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지난 19일 박근혜 전 대통령을 예방한 데 이어 오는 31일 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찾는다. 표면적으로는 전직 대통령들의 경험과 조언을 듣고 당내 화합을 도모하기 위한 소통 행보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정치에서 일정 하나, 만남 하나에도 메시지가 담긴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연쇄 예방을 단순한 ‘덕담 정치’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특히 국민의힘이 당내 노선과 권력구도를 둘러싸고 적지 않은 긴장감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정 원내대표는 박 전 대통령에게 국회의원 연찬회 참석을 요청했고, 긍정적인 검토 답변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이 전 대통령까지 예방한다. 이를 두고 ‘통합 행보’라고 설명할 수는 있다. 하지만 국민이 주목하는 것은 명분보다 그 행보가 실제로 누구를 향한 정치적 메시지인가 하는 점이다.
전직 대통령을 찾는 것이 통합이라면, 당내 갈등부터 풀어야 한다
정치권에서 전직 대통령 예방은 상징성이 크다. 특히 보수정당에서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은 각각 특정 정치적 역사와 지지층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따라서 두 전직 대통령을 잇달아 만나는 것은 보수 진영 전체를 아우르겠다는 메시지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하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전직 대통령을 만나 화합을 말하는 것과 현재의 당내 갈등을 실제로 봉합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당 대표와 원내대표가 서로 다른 정치적 메시지를 내놓고, 당 운영의 방향과 리더십을 놓고 미묘한 긴장관계가 형성된다면 전직 대통령 예방은 오히려 계파와 세력의 결집을 위한 정치적 행보로 오해받을 수 있다.
국민의힘이 지금 필요한 것은 ‘누구를 만났느냐’가 아니다. 무엇을 합의했고, 그것을 어떻게 당 운영과 민생 정치에 반영할 것인가이다.
장동혁 대표와 정점식 원내대표, 투톱의 엇박자는 위험하다
더 큰 문제는 당 대표와 원내대표의 역할과 메시지가 따로 움직이는 모습으로 비칠 가능성이다.
당 대표가 당의 전체적인 노선과 방향을 제시한다면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그 노선을 입법과 협상으로 구현해야 한다. 두 축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당은 자연스럽게 구심력을 잃는다.
특히 지도부 내부의 차이가 정책적 다양성을 넘어 주도권 경쟁이나 계파 갈등으로 해석되는 순간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정 원내대표가 ‘화합과 통합’을 강조하는 것은 충분히 긍정적인 메시지다. 그러나 그것이 당 대표의 노선과 충돌하거나 별도의 정치적 중심축을 구축하는 모습으로 비친다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정치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공개적인 충돌만이 아니다. 서로 다른 메시지를 국민에게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지도부의 신뢰를 갉아먹는다.
‘친박·친MB’ 프레임에 갇혀서는 안 된다
또 하나 경계해야 할 부분은 전직 대통령 예방이 과거의 계파 정치로 회귀하는 신호로 읽히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을 잇달아 찾는 행보가 보수정당의 역사와 경험을 폭넓게 포용하는 것이라면 의미가 있다. 하지만 만약 특정 지지층을 결집하고 당내 세력 균형을 재편하기 위한 정치적 신호로 작동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국민의힘이 과거의 계파 갈등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면 정권교체나 보수 재건을 외칠 명분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지금 국민이 원하는 것은 ‘누가 누구의 사람인가’가 아니라 ‘누가 국민의 삶을 해결할 것인가’다.
전직 대통령의 정치적 유산을 계승하는 것과 전직 대통령의 이름을 정치적 세력화에 이용하는 것은 엄연히 구분해야 한다.
박근혜·이명박의 조언을 ‘현재 정치’로 연결해야 한다
정 원내대표의 이번 행보가 진정한 통합 정치로 평가받으려면 후속 조치가 중요하다.
박 전 대통령과 이 전 대통령에게서 어떤 조언을 들었는지, 그것을 당 운영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 민생과 국회 운영에는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 것인지가 뒤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전직 대통령 예방은 결국 사진 한 장과 정치권의 해석만 남기는 이벤트가 될 수 있다.
반대로 두 전직 대통령의 경험을 바탕으로 당내 갈등을 조정하고, 원내에서 야당과 협상하며, 민생 입법을 만들어낸다면 이번 행보는 상당한 정치적 의미를 갖게 된다.
통합은 만남으로 시작할 수 있지만, 결과로 증명해야 한다.
국민의힘에 필요한 것은 ‘전직 대통령 정치’가 아니라 ‘미래 정치’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전직 대통령을 찾는 것은 과거와의 소통이다. 그러나 정당의 생존은 미래를 향한 비전에서 결정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정치적 경험을 존중하는 것과 과거 정치에 매몰되는 것은 다르다. 보수의 역사적 자산을 계승하되, 과거의 갈등과 계파정치는 과감하게 청산해야 한다.
정점식 원내대표의 행보가 진정한 ‘통합 정치’가 되려면 장동혁 대표와의 공개적이고 명확한 역할 조율, 당내 계파를 뛰어넘는 원내 전략, 민생 중심의 입법 성과가 뒤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 연쇄 예방은 통합의 행보가 아니라 당내 또 다른 권력축의 출현을 알리는 신호로 읽힐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결론적으로 국민의힘은 지금 과거의 이름을 소환해 지지층을 결집할 때가 아니다. 국민에게 보여줘야 할 것은 ‘누구를 만났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바꿀 것인가’다.
정점식 원내대표가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을 잇달아 예방하는 것이 진정한 통합 행보라면, 그 통합의 첫 번째 대상은 당 밖의 보수 원로가 아니라 현재 같은 당 안에서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는 지도부와 당원들이어야 한다.
전직 대통령의 조언을 듣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조언을 현재의 정치에 녹여내는 일이다.
국민의힘이 다시 국민의 신뢰를 얻으려면 ‘과거의 보수’를 호출하는 데서 멈추지 말고 ‘미래의 보수’를 증명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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