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가 지리산권 6개 군을 하나의 관광권역으로 연결하는 ‘ESG 가치여행’을 본격 추진한다. 하동·산청·함양·거창·합천과 전남 구례를 묶어 자연과 생태, 전통시장, 로컬푸드, 지역문화 등을 하나의 여행상품으로 연결하겠다는 구상이다.
경남도와 경남관광재단은 지난 19일 ㈜로망스투어, ㈜테마캠프여행사, ㈜노랑풍선, 새부산관광, ㈜아름여행사, ㈜승우여행사 등 6개 전담여행사를 선정했다.
이어 24일에는 6개 군과 경남·전남 관광재단, 지역운영조직, 여행사 관계자 등이 참여한 가운데 사업 추진회의를 열고 본격적인 상품 운영에 들어갈 준비를 마쳤다.
표면적으로 보면 새로운 관광상품 하나를 만드는 사업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사업이 던지는 질문은 훨씬 크다. 그래서 이번 사업의 성패는 결국 이 두 질문에 달려 있다.
“지리산의 관광객을 어떻게 지역의 소비자로 바꿀 것인가?”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ESG라는 이름을 붙인 관광이 실제로 지역주민의 소득과 지역경제에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가?”
지리산을 ‘관광지’가 아니라 ‘하나의 관광권역’으로
지리산권 관광의 가장 큰 약점 가운데 하나는 지역별 관광자원이 개별적으로 소비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하동에 왔다가 하동만 보고 돌아가고, 산청을 찾은 관광객이 산청만 둘러본 뒤 귀가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지리산권을 하나의 관광권역으로 바라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하동의 자연과 차 문화, 구례의 생태관광, 산청과 함양의 지리산 콘텐츠, 거창과 합천의 산림·수변자원 등을 하나의 동선으로 묶으면 관광객의 체류시간을 늘릴 수 있다. 경남도가 강조하는 ‘하루 더 머무는 여행지’도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관광객에게는 여행 선택지를 늘리고, 지역에는 숙박·식음료·교통·체험·쇼핑 등 추가 소비를 만들어내는 구조다. 관광객 한 명이 지역에 몇 시간 머무느냐와 하루, 이틀 숙박하느냐는 지역경제에 미치는 효과가 전혀 다르다. 따라서 체류시간을 늘리는 관광정책은 단순한 관광객 숫자 경쟁보다 훨씬 중요한 전략이 될 수 있다.
ESG 가치여행의 핵심은 ‘지역에서 돈을 쓰게 만드는 것’
이번 사업에서 주목할 부분은 지역운영조직과 여행사가 역할을 나눠 상품을 만든다는 점이다. 지역운영조직은 지역의 숨은 콘텐츠를 발굴하고, 여행사는 이를 실제 관광상품으로 구체화한다.
그 결과 ▲하동·구례 힐링여행 ▲산청·함양 지리산 힐링로드 ▲거창·합천 푸른 물길을 걷다 등 특화상품이 마련된다. 여기에 전통시장과 로컬푸드, 생태자원을 접목한다.
이 방식은 관광정책에서 상당히 중요한 변화다.
관광객을 유명 관광지에 데려다 놓는 것만으로는 지역경제 전체가 살아나기 어렵다. 관광객이 지역 식당에서 식사하고, 전통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로컬 체험에 참여하고, 지역 숙박업소에서 잠을 자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즉, ESG 관광의 핵심 성과지표는 ‘관광객 수’가 아니라 지역 내 체류시간과 지역소비액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ESG’라는 이름만 붙인다고 지속가능 관광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냉정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최근 관광 분야에서 ESG는 중요한 키워드가 됐지만, 이름만 ESG인 관광상품이 만들어질 가능성도 경계해야 한다.
친환경 관광을 표방하면서 실제로는 대형 관광버스 이동에 의존하거나, 지역 상생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지역주민에게 돌아가는 경제적 효과가 미미하다면 ESG라는 명칭은 홍보수단에 그칠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ESG 가치여행을 평가하는 구체적인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관광객 한 명이 지역에서 얼마를 소비했는지, 지역 업체가 얼마나 참여했는지, 지역 생산품이 얼마나 판매됐는지, 지역주민에게 돌아간 경제적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 등을 측정해야 한다.
환경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일회용품 사용을 얼마나 줄였는지, 대중교통이나 친환경 이동수단을 얼마나 활용했는지, 관광지의 환경부담을 얼마나 낮췄는지 등을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그래서 ESG 관광은 구호가 아니라 측정 가능한 성과로 증명돼야 할 것이다.
가장 큰 위험은 ‘11월 이후’다
이번 사업은 올해 11월 말까지 상품을 운영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지리산권 관광이 진정한 지속가능 관광모델이 되려면 단기간의 사업기간을 넘어 상설 관광상품으로 살아남을 수 있어야 한다.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이 끝난 뒤에도 여행사가 상품을 계속 판매하고, 지역운영조직이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공급하며, 지역 업체가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업기간 동안 관광객을 모으는 데 성공하더라도 이후에는 다시 기존의 개별 관광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다. 특히 관광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재방문과 입소문이다.
한 번 방문한 관광객이 “다시 가고 싶다”고 느끼지 못한다면 지속가능 관광이라는 이름이 무색해진다. 따라서 첫 방문객을 확보하는 것과 동시에 재방문객을 만드는 전략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6개 군의 ‘협력’이 가장 어려운 과제가 될 수도 있다
지리산권을 하나의 관광권역으로 묶는다는 구상은 매력적이다. 하지만 행정구역이 서로 다른 6개 군을 하나의 관광상품으로 묶는 과정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예산과 사업비 분담, 관광객 유치 실적, 홍보비, 관광객 동선, 지역별 수익 배분 등을 놓고 이해관계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지역에 관광객이 더 오래 머무느냐에 따라 지역 간 체감 효과도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성공적인 지리산권 관광을 위해서는 단순한 업무협약을 넘어 상설적인 공동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관광객 수만 공유할 것이 아니라 체류시간과 소비액, 숙박률, 재방문율 등의 데이터를 공동으로 관리하고, 성과를 권역 전체의 관점에서 평가해야 한다.
‘지원금 관광’에서 ‘관계인구 관광’으로 전환해야
지속가능한 관광을 만들기 위해서는 단순한 할인이나 여행비 지원에 의존해서도 안 된다. 지원금이 있을 때만 관광객이 찾아온다면 사업 종료와 함께 관광객도 사라질 수 있다. 대신 관광객과 지역이 지속적인 관계를 맺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지리산권 6개 군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통합 디지털 관광패스, 지역 특산품과 로컬푸드를 정기적으로 접할 수 있는 로컬 구독서비스, 방문 횟수에 따라 혜택을 제공하는 재방문 멤버십 등을 검토할 수 있다.
한 번 방문한 관광객을 다시 찾는 관광객으로, 다시 찾는 관광객을 지역의 관계인구로 확대하는 전략이다. 이것이야말로 단기 관광객 숫자를 넘어 지역에 지속적인 소비를 만들어내는 방법일 게다.
관광데이터를 하나로 묶어야 진짜 변화가 시작된다
또 하나 중요한 과제가 있다. 바로 데이터 통합이다. 그러니까 현재 6개 군의 관광정보와 방문객 데이터가 각각 관리된다면 지리산권 전체의 관광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어느 계절에 어느 지역을 많이 찾는지, 관광객들이 어디에서 숙박하는지, 어느 지역에서 소비하는지, 어떤 콘텐츠에서 체류시간이 길어지는지 등을 통합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관광객의 동선을 설계하고 계절별 상품을 고도화해야 한다. 가령 여름에는 계곡·수변 관광, 가을에는 단풍과 걷기 여행, 겨울에는 웰니스와 치유 프로그램, 봄에는 생태·꽃·지역문화 콘텐츠를 결합하는 식이다. 만약 데이터가 쌓이면 쌓일수록 이제는 지리산권 관광은 ‘감’이 아니라 ‘전략’으로 움직일 수 있음이다.
ESG 가치여행의 진짜 시험대는 ‘지역주민’
결국 관광정책의 최종 수혜자가 누구인지 따져봐야 한다. 관광객이 늘고 사진이 많이 찍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역의 식당과 숙박업소, 농가와 생산자, 체험사업자, 전통시장 상인들이 실제로 혜택을 받아야 한다.
지역주민이 관광을 통해 소득을 얻고, 자신들의 문화와 자원이 관광콘텐츠로 인정받으며, 관광객과 지역주민이 서로 만족할 수 있을 때 비로소 ESG 관광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지리산권 ESG 가치여행은 단순한 여행상품 개발사업이 아니다. 지리산이라는 거대한 자연자원을 어떻게 지역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동력으로 전환할 것인지 시험하는 프로젝트인 셈이다.
‘하루 더 머무는 지리산’은 관광객에게 달려 있지 않다
경남도가 말하는 ‘하루 더 머무는 여행지’가 현실이 되려면 관광객에게 머물러 달라고 요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머물 만한 콘텐츠가 있어야 하고, 먹을거리가 있어야 하며, 지역주민과 만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음에 다시 오고 싶다”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이번 6개 군 연계가 성공한다면 지리산권은 단순히 유명 관광지를 나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하나의 거대한 체류형 관광권역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단기 행사와 관광객 숫자에만 집중한다면 ESG라는 이름만 남을 수도 있다.
따라서 앞으로 경남도가 주목해야 할 지표는 관광객 숫자가 아니다.
체류일수, 지역소비액, 지역업체 참여율, 재방문율, 주민소득 증가, 환경부담 감소. 이 다섯 가지가 실제로 개선된다면 지리산권 ESG 가치여행은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결국 지리산권 관광의 미래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왔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머물고, 얼마나 지역과 관계를 맺고, 얼마나 지역에 가치를 남겼느냐’에 달려 있다.
지리산의 자연을 관광객에게 보여주는 시대를 넘어, 지리산과 지역주민, 관광객이 함께 살아가는 관광생태계를 만드는 것. 그것이 지리산권 ESG 가치여행이 풀어야 할 진짜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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