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지방자치단체의 민생지원금 정책이 정반대의 길로 갈라지고 있다. 창원시는 재정 건전성을 이유로 전 시민 대상 민생지원금 지급을 최종적으로 포기한 반면, 진주시의회에서는 ‘진주형 민생안정지원금’ 편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표면적으로는 ‘재정 건전성 대 민생 회복’의 대립처럼 보인다. 그러나 문제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단순한 찬반 논쟁으로 끝낼 사안이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돈을 줄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라, 한정된 지방재정을 어디에 어떻게 투입해야 시민의 삶과 지역경제를 실제로 살릴 수 있느냐는 냉정한 판단이다.
■ 창원시의 선택, 냉정하지만 불편한 현실
창원시가 전 시민에게 1인당 10만 원의 민생지원금을 지급하려면 약 1,000억 원의 재원이 필요하다.
100만 명 안팎의 시민에게 일괄적으로 지급하는 방식은 정치적으로는 단순하고 행정적으로도 이해하기 쉽다. 시민 입장에서는 ‘나도 받는다’는 즉각적인 체감 효과가 있다.
그러나 지방정부가 감당해야 할 비용은 단순히 지급액 1,000억 원으로 끝나지 않는다.
행정구역 통합 이후 창원시가 안고 있는 고정비와 인건비, 각종 계속사업의 재정부담까지 고려하면 거액의 일회성 현금성 지출은 향후 재정 운용의 선택지를 좁힐 수밖에 없다.
민생을 살리겠다며 오늘 10만 원을 지급하고, 내일 복지·교통·도시 인프라 사업의 재원을 줄여야 한다면 그것이 과연 지속 가능한 민생정책인가.
창원시의 결정을 단순히 ‘시민에게 돈을 주지 않는 행정’이라고 몰아붙여서는 안 되는 이유다. 왜냐하면 재정은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숫자로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 그렇다고 진주시의 민생지원금 요구를 가볍게 볼 수도 없다
반대편에는 진주시가 있다.
지난 26일 진주시의회 신현국 의원은 제276회 제1차 정례회 제1차 본회의 5분 자유발언에서 고물가와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시민들의 생활 안정과 지역경제 회복을 위해 전 시민 대상 ‘진주형 민생안정지원금’ 편성을 촉구했다.
논리도 분명하다.
물가는 오르고 소비는 위축되고 있다. 특히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는 시민들의 지갑이 닫히면 곧바로 매출 감소를 체감한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화폐 또는 지역 내에서 사용할 수 있는 지원금이 지급된다면 일정 부분 소비를 촉진하고 골목상권에 돈이 돌게 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실제로 일부 지자체가 민생지원금 정책을 선택하면서 인접 지역과 비교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왜 어느 지역 시민은 받고, 우리는 받지 못하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형평성 문제가 아니다. 지방정부에 대한 시민들의 정책 체감도와 직결되는 문제다.
■ 그러나 ‘남들도 주니까 우리도 준다’는 논리는 위험하다
여기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 지자체 간 경쟁적인 현금 지급이다.
인근 지방정부가 지원금을 지급한다고 해서 재정 여건이 다른 지방정부까지 동일한 정책을 따라야 할 이유는 없다.
지방재정은 지역마다 세입 구조와 인구 규모, 채무, 복지 수요, 계속사업 부담이 모두 다르다.
그런데 ‘옆 동네는 10만 원을 주는데 우리는 왜 안 주느냐’는 식으로 정책을 결정한다면 지방자치가 아니라 사실상 지원금 경쟁으로 전락할 수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일회성 지원금이 지역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지원금이 지급되는 순간에는 소비가 늘어날 수 있지만, 지원금이 소진된 뒤 다시 소비가 위축된다면 효과는 제한적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지원금 지급 자체가 아니라 돈이 지역경제 안에서 얼마나 오래 순환하느냐다.
■ 진짜 민생정책이라면 ‘현금 살포’에서 벗어나야 한다
따라서 이제 지방정부가 고민해야 할 것은 보다 정교한 민생정책이다.
전 시민에게 동일한 금액을 지급하는 보편지원 방식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재정 여건과 경제적 효과를 함께 따져야 한다.
첫째, 취약계층과 소상공인에 대한 선별적 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같은 10만 원이라도 고소득층과 생계가 어려운 시민에게 미치는 효과는 전혀 다르다. 한정된 재원을 가장 절실한 계층에 집중하는 것이 재정 효율성 측면에서 합리적일 수 있다.
둘째, 지역화폐와 골목상권 지원을 결합해야 한다.
단순 현금 지급보다 지역 내에서 사용하도록 설계한다면 지원금이 대형 온라인 플랫폼이나 외부 소비로 빠져나가는 것을 줄이고 지역경제 내부에서 순환시키는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셋째, 소상공인 금융지원과 공공요금 안정화도 병행해야 한다.
특례보증 확대, 이자 부담 완화, 임대료·공공요금 부담 완화 등은 일회성 현금지원보다 지속적인 생존 기반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 결국 문제는 ‘줄 것이냐, 말 것이냐’가 아니다
창원시의 결정은 재정 건전성을 우선한 선택이다.
진주시의회의 요구는 경기 침체와 시민들의 생활고를 고려한 민생 회복의 요구다.
둘 가운데 어느 한쪽을 무조건 옳다고 단정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접근이다.
오히려 두 사례가 지방정부에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재정 건전성을 지키면서도 민생을 외면하지 않는 정교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방정부가 시민에게 가장 듣기 좋은 말을 하는 것과 시민에게 가장 필요한 정책을 하는 것은 다르다.
선거를 의식한 현금성 정책은 단기적으로 박수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부담은 결국 미래의 지방재정과 시민들에게 돌아올 수 있다.
반대로 재정 건전성만 강조하면서 경기 침체와 시민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도 책임 있는 행정이라고 보기 어렵다.
■ 진주시가 정말 지원금을 추진한다면 먼저 공개해야 할 것
진주시의회가 민생안정지원금 편성을 요구한다면 이제는 ‘지급하자’는 주장만으로는 부족하다.
얼마를 지급할 것인지, 재원은 어디에서 마련할 것인지, 일회성 지급 이후 재정 공백은 어떻게 메울 것인지, 지역경제에 어떤 효과가 예상되는지부터 시민 앞에 공개해야 한다.
특히 재원 마련을 위해 기존 사업을 삭감한다면 어떤 사업을 줄일 것인지도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시민에게 10만 원을 주는 대신 어떤 공공서비스를 포기해야 하는지까지 설명하는 것이 진정한 재정 민주주의다.
■ 결론…민생은 돈을 뿌리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창원시의 포기는 재정 건전성이라는 원칙을 보여줬고, 진주시의회의 촉구는 민생 회복이라는 현실을 제기했다.
이제 공은 지방정부와 지방의회에 넘어갔다.
민생지원금은 만능열쇠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시민들에게 돈을 나눠주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 돈이 시민의 생활 안정과 지역경제 회복으로 연결되도록 만드는 정책 설계다.
따라서 진주시가 민생안정지원금을 추진한다면 단순한 ‘전 시민 10만 원’이라는 숫자 경쟁에 머물 것이 아니라 재정 건전성·지원 대상·지역화폐·소상공인 지원·지역경제 선순환 효과를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야 한다.
그리고 창원시 역시 재정 건전성을 이유로 지원금을 포기했다면 그에 걸맞게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대체 민생대책을 제시해야 한다.
결국 시민들이 원하는 것은 정치인의 구호가 아니다. 지금 당장 살림살이에 도움이 되면서도 미래 세대에게 빚을 떠넘기지 않는 책임 있는 행정이다.
이번 창원과 진주의 엇갈린 선택이 단순한 ‘지원금 지급 여부’ 논쟁을 넘어, 경남 지방재정의 방향과 민생정책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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