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두 개로 분리한다는데…“그렇다면 혁신도시는 왜 만들었나” 지역균형발전 논란
정부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사실상 두 개의 공기업으로 쪼개는 방안을 공식화했다.
정부가 9월 3일 발표한 ‘공공기관 기능개혁 추진방안’에 따르면 LH는 앞으로 택지개발과 주택건설을 담당하는 주택도시개발공사(가칭)와 주거복지 및 자산비축을 담당하는 주택도시자산공사(가칭)로 분리된다.
정부가 내세우는 논리는 명확하다.
개발사업은 신속성과 사업성이 중요하고, 주거복지는 공공성과 지속성이 중요한 만큼 서로 다른 기능을 한 조직 안에 묶어놓은 것이 비효율을 낳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LH가 왜 지금의 형태로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LH 본사를 비롯한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부터 다시 물어야 한다.
특히 경남 진주혁신도시 입장에서는 단순한 공기업 조직개편 문제가 아니다.
수년 동안 추진해온 혁신도시와 지역균형발전이라는 국가 정책의 철학이 이번 LH 분할 과정에서 제대로 유지될 것인지가 핵심 쟁점이다.
LH를 왜 혁신도시로 옮겼나…정부는 이 질문부터 답해야 한다
LH를 둘로 나누겠다는 발표를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질문은 이것이다.
“
그렇다면 처음부터 혁신도시는 왜 만들었는가?”
공공기관 지방이전은 단순히 서울에 있는 기관의 주소를 지방으로 옮기는 사업이 아니었다.
수도권에 집중된 공공기관과 일자리를 지방으로 이전하고, 이를 기반으로 지역경제에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겠다는 국가적 프로젝트였다.
경남혁신도시 역시 마찬가지였다.
LH를 비롯한 공공기관이 이전하고, 관련 기업과 연구기관, 종사자와 가족이 이동하면서 지역의 경제·생활권을 확대하는 것이 혁신도시 정책의 핵심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LH의 핵심 기능을 둘로 쪼개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질문해야 한다.
두 기관 모두 진주혁신도시에 남는 것인가. 본사 기능은 어떻게 유지되는가. 핵심 의사결정 권한은 어디에 남는가. 인력은 어떻게 배분되는가. 관련 기업과 일자리는 어떻게 되는가.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이 없다면 이번 개편은 단순한 기능조정이 아니라 혁신도시의 기반 자체를 흔드는 문제가 될 수 있다.
‘효율화’라고 하지만 정작 173조원 부채를 어떻게 나눌지는 안 보인다
LH 개편의 가장 큰 현실적 문제는 재무구조다.
LH의 부채는 173조원을 웃도는 것으로 제시됐다.
공공임대주택 확대에 따른 임대사업 손실도 연간 3조원을 넘어서는 상황이다.
정부가 LH의 재무 부담을 문제 삼는 것 자체는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부채를 둘로 나눈다고 재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택지개발과 주택건설처럼 수익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업과 주거복지처럼 비용이 발생하는 사업을 분리하면 회계상 구조는 깔끔해질 수 있다.
그러나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회계장부가 깔끔해지는 것이 아니다.
공공임대주택을 누가 책임질 것인지, 그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답이다.
개발사업에서 발생하는 이익으로 공공임대사업의 손실을 보전하는 기존의 교차보전 구조를 깨뜨린다면 주거복지 전담기관의 재정 부담은 오히려 커질 수 있다.
결국 정부 재정이 투입돼야 한다면 LH를 두 개로 나누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부채를 분리하는 것과 부채를 해결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더 심각한 문제는 ‘돈 되는 LH’와 ‘돈 드는 LH’로 갈라질 가능성
이번 개편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도 여기에 있다.
개발사업은 택지를 조성하고 주택을 공급하면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반면 공공임대와 주거복지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지만 시장 논리만으로는 추진하기 어려운 사업이다.
이를 단순히 두 조직으로 나누면 자칫 ‘돈을 버는 조직’과 ‘돈을 쓰는 조직’으로 공기업을 갈라놓는 결과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주택도시자산공사의 장기적인 재정 지속가능성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개발공사의 이익 일부를 주택도시기금 등을 통해 지원한다고 해도 법적·제도적 장치가 불명확하다면 매년 정부 재정에 의존하는 구조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국민이 부담해야 할 재정 비용은 오히려 커질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조직 이름부터 바꾸는 데 집중할 것이 아니라 수익사업과 공공사업 사이의 재정 연계 구조를 먼저 설계해야 한다.
173조원 부채, 자산·인력·사업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조직 분할은 책상 위에서 선을 긋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LH가 보유한 토지와 주택, 임대주택, 개발사업권, 금융부채, 인력, 시스템, 계약관계 등을 모두 재배분해야 한다.
특히 어느 기관에 어떤 부채를 배분할 것인지가 핵심이다.
임대주택 관련 자산과 부채를 주거복지 전담기관에 집중시킬 경우 해당 기관의 재무건전성이 급격히 악화될 수 있다.
반대로 개발사업에 활용할 수 있는 우량 자산을 개발공사에 집중하면 자산 배분의 형평성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
결국 ‘누가 좋은 자산을 가져가고 누가 부채를 떠안을 것인가’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정부가 이 부분을 명확하게 공개하지 않은 상태에서 조직 분리부터 추진한다면 향후 갈등은 불가피하다.
공급 확대가 급한데 조직부터 쪼개는 것이 맞나
또 다른 문제는 시점이다.
정부는 현재 주택 공급 확대와 주거 안정이 중요한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주택 공급의 핵심 공기업인 LH를 대규모로 개편한다.
조직을 둘로 나누면 인사와 자산 재배치, 업무 시스템 재설계, 사업권 조정, 노사 협의, 법령 정비 등 엄청난 행정적 비용이 발생한다.
그 과정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현장의 공급 속도가 떨어지는 것이다.
정부가 주택 공급을 서두르라고 하면서 정작 공급을 담당하는 조직을 대대적으로 흔드는 모순이 발생할 수 있다.
개혁은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개혁의 목표가 공급 확대라면 공급 현장이 흔들리지 않는 방식으로 개편하는 것이 우선이다.
진주혁신도시에는 더 민감한 문제다
특히 경남 진주혁신도시는 이번 사안을 단순히 ‘LH 내부 조직개편’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LH는 진주혁신도시의 상징성이 매우 큰 핵심 공공기관이다.
LH의 기능과 조직이 바뀌면 자연스럽게 본사 기능과 인력, 관련 기업,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부는 LH 분할 과정에서 진주혁신도시의 기능과 역할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를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두 공사의 본사를 어디에 둘 것인지, 핵심 의사결정 기능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 인력 이동은 어느 수준인지,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가 공개돼야 한다.
혁신도시를 만들어 놓고 핵심 공공기관의 기능을 재편하면서 지역에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는다면 지역 주민 입장에서는 허탈할 수밖에 없다.
지역균형발전은 ‘주소 이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번 LH 개편 논란에서 반드시 짚어야 할 대목이다.
지역균형발전은 공공기관 건물 하나를 지방에 세워놓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권한과 인력, 예산, 일자리, 관련 산업, 의사결정 기능이 함께 내려와야 한다.
만약 조직 분리 과정에서 본사는 지방에 그대로 두면서 실제 핵심 기능과 권한은 다른 곳으로 빠져나간다면 형식적인 지방이전에 불과하다.
더 나아가 두 기관 중 하나라도 수도권 중심의 의사결정 구조로 회귀한다면 혁신도시 정책의 취지는 더욱 약화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개편은 단순히 ‘LH를 둘로 나눈다’는 문제가 아니다.
공공기관 지방이전 이후 정부가 지역균형발전을 어떤 철학으로 계속 추진할 것인지에 대한 시험대다.
정부가 지금 당장 공개해야 할 5가지
LH 분할을 추진하려면 정부는 최소한 다음 다섯 가지에 답해야 한다.
첫째, 두 공사의 본사는 어디에 둘 것인가
진주혁신도시의 기존 공공기관 이전 취지와 지역균형발전 원칙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 밝혀야 한다.
둘째, 173조원 부채는 어떻게 나눌 것인가
단순한 숫자 배분이 아니라 자산과 부채의 연계성을 고려한 구체적인 재무계획을 공개해야 한다.
셋째, 공공임대주택 손실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주거복지 전담기관에 막대한 부채만 떠넘기는 방식이라면 조직개편의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넷째, LH 직원과 지역 일자리는 어떻게 되는가
인력 이동과 조직 축소가 혁신도시의 인구와 상권, 지역경제에 미칠 영향을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다섯째, 지역균형발전 원칙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공공기관의 본사 위치뿐 아니라 실제 의사결정권과 핵심 업무가 지방에 남는지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해법은 ‘졸속 분할’이 아니라 단계적 개혁이다
LH의 기능 충돌과 재무 악화가 심각하다면 개혁 자체를 피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조직 분할을 먼저 하고 문제를 나중에 해결하는 방식은 위험하다.
우선 개발·주택건설·주거복지·자산비축 기능별로 손익과 재무구조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그 다음 자산과 부채를 사업별로 정확하게 분류하고, 두 기관의 장기적인 수익·재정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또한 개발사업의 이익이 공공임대주택과 주거복지에 안정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주택도시기금 등을 통한 법적 재원 연계 장치를 명확하게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역균형발전 장치다.
LH가 두 개로 나뉘더라도 진주혁신도시의 본사 기능과 핵심 의사결정 권한, 지역 인력과 산업 생태계가 약화되지 않도록 법과 제도로 보장해야 한다.
LH 분할의 진짜 시험대는 ‘효율’이 아니라 ‘책임’이다
정부는 이번 개편을 기능개혁이라고 설명한다.
맞을 수도 있다.
한 조직에 지나치게 많은 기능을 몰아넣어 발생한 비효율이 있다면 개선해야 한다.
하지만 공기업 개혁의 목적은 조직도를 예쁘게 바꾸는 데 있지 않다.
국민에게 더 좋은 주택을 공급하고, 서민의 주거를 안정시키며, 공공임대주택을 지속적으로 공급하고, 국민의 세금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진짜 목적이다.
따라서 LH를 두 개로 나누는 것만으로 개혁이 완성됐다고 선언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173조원에 달하는 부채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공공임대주택의 적자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개발이익과 주거복지를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혁신도시와 지역균형발전의 약속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 정부가 답해야 한다.
특히 진주혁신도시에는 더 이상 추상적인 원론이 아니라 구체적인 답이 필요하다.
“LH를 둘로 나누겠습니다”라는 발표보다 먼저 나와야 할 말은 “진주혁신도시의 기능과 지역균형발전을 이렇게 지키겠습니다”여야 한다.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옮겨놓고 핵심 기능을 다시 흔든다면 국민이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애초에 혁신도시는 왜 만들었습니까?”
이번 LH 분할 논란에서 정부가 반드시 답해야 할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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