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더 잘 쓰고, 더 빨리 판단하며, 취향과 감정까지 예측하는 시대다. 사람들은 업무뿐 아니라 연애 상담을 하고, 메시지를 분석하고, 쇼핑과 투자를 결정하고, 외로운 밤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는 데도 AI를 이용한다. AI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는 일은 이제 새롭지 않다. 그렇다면 그다음 질문은 무엇일까.
경상국립대(총장 권진회) 국어교육과 한귀은 교수가 AI 시대의 인간을 ‘타자’와 ‘주체’라는 두 개의 오래된 철학적 개념을 통해 다시 묻는 책 《AI 이후의 타자》와 《AI 너머의 주체》를 펴냈다. 두 책은 커뮤니케이션북스에서 9월 2일 동시에 출간됐다.
사진 왼쪽부터 한귀은 교수와 출간한 책 《AI 이후의 타자》, 《AI 너머의 주체》표지
두 권은 일종의 짝을 이룬다. 《AI 이후의 타자》가 “AI 시대에 ‘너’는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묻는다면, 《AI 너머의 주체》는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 있는가”를 추적한다. AI 기술 자체보다는 AI가 이미 바꾸어 놓고 있는 사랑과 관계, 욕망과 선택, 노동과 소비, 불안과 애도의 풍경에 초점을 맞춘 것이 특징이다.
《AI 이후의 타자》는 사르트르의 ‘지옥’, 헤겔의 ‘인정’, 라캉의 ‘욕망’, 니체의 ‘신’, 메를로퐁티의 ‘살’, 롤랑 바르트의 ‘고백’, 프로이트의 ‘불안’, 지라르의 ‘희생양’, 데리다의 ‘애도’, 레비나스의 ‘얼굴’ 등 열 개의 키워드로 구성됐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AI가 새로운 종류의 ‘타자’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통적으로 철학에서 타자는 나를 오해하고 거절하며,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존재였다. 그러나 AI는 다르다. 언제든 호출할 수 있고, 빠르게 응답하며, 쉽게 화내지도 떠나지도 않는다. 책은 이를 두고 인간이 오랫동안 원해 온 ‘이상적인 타자’의 모습과 닮았다고 본다. 구체적인 사람이 없어도 타자성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AI 너머의 주체》는 질문의 방향을 ‘나’에게 돌린다. 스피노자의 ‘정동’, 푸코의 ‘자기배려’, 아감벤의 ‘벌거벗음’, 소크라테스의 ‘문답’, 융의 ‘그림자’, 바디우의 ‘사건’, 들뢰즈의 ‘탈주’, 플라톤의 ‘에로스’, 아리스토텔레스의 ‘습관’, 라캉의 ‘환상’을 통해 AI 시대 주체의 모습을 탐색한다.
이 책에서 주체는 흔히 말하는 ‘주체적인 인간’과 조금 다르다. 자신의 욕망을 정확히 알고 합리적으로 선택하며 삶을 통제하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알고리즘이 예측한 선택에서 벗어나고, 잘못된 문장을 보내 후회하고, 스스로도 설명할 수 없는 욕망 때문에 계획을 망치는 순간에 주체가 나타난다고 본다.
저자는 AI 시대의 인간이 자율성을 빼앗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부담을 기꺼이 내려놓고 있을 가능성에도 주목한다. 무엇을 먹을지, 어디로 갈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상대의 마음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를 추천받는 일은 편리하다. 책은 “AI 시대에 인간이 잃는 것은 일자리나 노동만이 아니라 더 은밀히 내려놓고 싶어 하는 ‘주체라는 짐’”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결국 두 책은 AI에 관한 책이면서 동시에 인간에 관한 책이다. 한 권은 나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너’가 왜 필요한가를 묻고, 다른 한 권은 나조차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나’가 왜 중요한가를 묻는다. 모든 것을 더 정확하게 설명하고 예측하려는 기술의 시대에 오히려 설명되지 않는 인간의 몫을 탐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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